봄은 오는 데

봄은 오는 데

이현 2020-03-11 (수) 18:51 4년전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약동(躍動)의 계절이요, 새 생명을 태생케 하여 성장시키는 용수철의 계절이다. 봄을 영어로 스프링(spring)이라 한다.

그 어원을 보면 '뛰다, 튀어 오르다, 일어나다' 등의 뜻으로 용수철의 성질처럼 위로 튀어 오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봄 춘()의 자형은 상형문자로 풀이 햇빛을 받아 무리지어 나오는 모양에서 '튀어나오다, 솟아오르다, 싹이 트다'라는 자의를 가지며 24절기로는 입춘(立春)부터 곡우(穀雨)까지를 일컫는다.

 

지난 겨울은 근년에 보기 드물게 유난히 춥고 길게 느껴졌다. 그야말로 짠한 서민들의 몸과 마음을 더욱 움츠려들게 만든 겨울나기였다.

심지어 예전에 없었던 코르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겨울 추위의 난관을 용케도 빠져나온 뒤 끝에 또 다른 시련이 다가온 것이다. 시련 없이 오는 봄은 없다. 자연의 봄이든, 사람의 봄이든 모진 겨울을 넘겨야 찾아온다. 신(神)은 인간에게 견뎌 낼 수 있을 정도의 시련과 고통을 준다고 했다.

봄은 상징적으로 생명과 소생. 희망과 시작을 나타낸다.

그래서일까. 봄에는 성인(聖人)들도 많이 오셨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꽃이 만발한 봄에 오셨고. 예수님의 부활도 꽃피는 계절 4월의 어느 봄날에 이루어졌다. 말하자면 성인들은 봄이라는 계절을 택하여 우리들에게 생명의 의미를 전하고 인류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신 것이다.

 

1920년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뉴욕에서 한 맹인이 거리에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는나는 맹인입니다라고 적힌 작은 팻말을 들고 있었지만, 행인들은 맹인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지나칠 뿐이었다. 그때 행인 한 명이 다가와 팻말의 글귀를 봄이 오고 있지만 나는 봄을 볼 수가 없습니다.

(Spring is coming soon, but I can’t see it)”로 바꾸어 놓고 사라졌다.

그러자 냉담했던 행인들의 적선이 이어졌다. 이 예화에서 팻말의 문구를 바꾼 사람은 프랑스 시인 앙드레 불톤(Andre Breton)이었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다.” 러시아의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 1799~1837)의 일화이다.

그는 모스크바 광장에서 한 맹인 걸인을 발견했다. 그는 광장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벌벌 떨다가 사람들의 발소리가 나면 한 푼 줍쇼, 얼어 죽게 생겼습니다!” 하면서 구걸을 했다.

그의 모습은 가련했지만 모스크바에서 그런 걸인은 많았다. 때문에 그에게 특별히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한 시민은 줄곧 그를 주의 깊게 지켜보다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역시 가난한 형편이라 그대에게 줄 돈이 없소. 대신 글씨 몇 자를 써서 주겠소. 그걸 몸에 붙이고 있으면 좋은 일이 있을 거요. 푸시킨은 종이 한 장에 글씨를 써서 걸인에게 주고 사라졌다.

며칠 후 푸시킨은 친구와 함께 다시 모스크바 광장에 나갔는데 그 걸인이 어떻게 알았는지 불쑥 손을 내밀어 그의 다리를 붙잡았다. 선생님 목소리를 들으니 며칠 전 제게 글씨를 써준 분이군요. 그 종이를 붙였더니 그날부터 깡통에 많은 돈이 쌓였답니다.”그 맹인 걸인이 물었다. “그날 써 준 내용이 도대체 무엇인지요?” 푸시킨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별거 아닙니다. 겨울이 왔으니 봄도 멀지 않으리! 라고 썼습니다.”

사람들은 이 걸인을 보고 느꼈을 것이다. 이 사람은 지금은 비록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 봄을 기다리는 이 사람은 도와 줄 필요가 있다 는 것이다.

 

세상은 어수선 한데 그래도 봄은 오고 있다. 동산에 봄소식 전하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고 강변의 물안개 피어오르며 너울너울 춤추고 있다.

억새풀들은 봄바람에 춤을 춘다. 수많은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강바람, 억새풀은 흩날리는데 자연은 조용히 이전에 듣지 못했던 봄의 목소리가 들려준다. 봄이 오는 것이 들에서도 산에서도 들리고 보이고 느껴진다. 아직 꽃샘추위도 남았건만 가까이서 들린다. 부드럽고 따뜻한지 볼 수도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있는 계곡에 쌓인 얼음장이 얼어 붙었던 시냇물이 녹으면서 움직인다. 노란 복수초가 꽃대를 세우고 뾰족뾰족 새싹이 나오고 있다.

 

이제 그만 긴 겨울잠에서 어서 일어나자. 겨우내 깊숙한 아랫목에 이부자리 일랑 걷어차고 일어나자. 몸을 펴고 양 팔을 뻗어 봄의 푸른 하늘을 향하여 기지개를 쭉 켜보자. 그래서 대 자연의 합창소리에 우리도 조화롭게 추임새 넣으며 아지랑이 손짓 따라 봄에 길벗이 되어보자.

 

봄이 난만해지는 415()에 제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천 과정에 말들이 많다.

풀뿌리 민주주의의가 첫 단추부터 혼란한 상황이 진행되어 걱정을 안겨 준다. 정치를 어찌 권모술수(權謀術數)의 소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이 세상을 행복하게 하려면. 정치인들의 선정덕치(善政德治)에 대한 깨달음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봄이 참 좋다. 새로운 시작. 소생. 희망과 생명력. 그리고 온화함으로 가득 찬 봄에 건강한 씨앗이 뿌려지기를 기원해본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며. 씨를 뿌리지 아니하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는 만고(萬古)의 진리를 깨달아서 세상의 기쁨이 더욱 커갔으면 좋겠다.

 

봄에 대한 시를 감상하며 봄을 맞이하는 마음들을 가다듬어 보자.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중에서

 

우리 인생도 춘화(春花)현상과 같다. 눈부신 인생의 꽃은 혹한의 추위와 시련을 거친 뒤에야 아름답게 활짝 피는 법이다. 이제부터 희망이다. 어둠에 갇힌 캄캄한 동굴이 아니라, 겨울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길가의 나무는 새순을 흠뻑 머금은 망울을 살며시 내밀고 있다. 이름 모를 연둣빛 들풀들이 경쟁하듯 도로 가장자리를 점령해 나간다. 봄이 오긴 오려나 보다. 하지만 마음 한곳에 뭔가 준비되지 않는 봄을 맞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무거움을 떨쳐낼 수가 없다.

어디에선가 읽어 본 한 구절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 첫 사랑이었다.”

이제 봄에 계절 첫 사랑의 모습으로 봄을 만끽하자.



이인혁 시인 (본지 편집국장)

 

[필자 주요약력]

 

월간 한국시 부문 신인문학상, 월간 문학세계 문학상

현재, 한국문단 문인협회 대표회장

재단법인 평화의 길 국제재단 법인대표/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