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박혜진의 읽는 사이] 죽음을 말하다, 가장 웃기고 가장 예의바르게…

[서효인·박혜진의 읽는 사이] 죽음을 말하다, 가장 웃기고 가장 예의바르게…

문형봉 2020-04-25 (토) 23:44 4년전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 케이틀린 도티 지음, 임희근 옮김

/ 반비, 360쪽, 1만8000원


 누군가의 시신이 담겼을 관 위에 조화가 놓여 있다. 우리는 저렇듯 살면서 수많은 죽음을 마주하게 되는데, 죽음의 실체에 대해서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은 미국 장의사가 펴낸 에세이로 인간이 죽음을 다루는 방식과 관련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언스플래쉬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게 정설이지만 출판의 영역에서 죽음은 이미 하나의 장르가 된 지 오래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2015년 한국을 강타한 화제작이다. 하버드 의대 교수인 저자는 생명을 연장하는 데만 골몰하는 현대의학이 외면하는 죽음의 문제들, 그러니까 스스로를 돌볼 수 없을 만큼 늙고 병들었을 때 우리가 마주하는 실제적인 문제들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이듬해에는 의학자의 언어와 비교되는 당사자의 언어로 죽음의 문제를 직시하는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될 때’는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신경외과 레지던트의 마지막 2년에 대한 기록이다.

의학 전문가들만 죽음을 사유하는 건 아니다. “미워하면서도 사실은 깊이 사랑했던 세상에 대해서 나만이 쓸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써야 하지 않을까.” 철학자 김진영의 유고 산문집 ‘아침의 피아노’는 임종 3일 전까지 병상에서 쓴 234편의 일기를 엮은 것으로, 죽음의 길목에서 더 빛나는 인간 정신의 품위를 증명한다. 그런가 하면 죽음을 돕는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도 있다. 지난주 소개된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없겠지만’은 완화의학이라는 조금은 낯선 개념으로 죽음에 달라붙은 낯익은 개념을 떼어 낸다. 완화의학의 목표는 무엇보다 죽음이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시키는 데 있다. “오래 살아남은 자의 외로움”으로 인해 아직 살아 있는 자가 죽음의 그림자 안에 방치되지 않도록 완화의학 전문가들은 삶의 끝이 아닌 삶의 한가운데에서 죽음을 생각한다. 이들이 병들고 약해진 환자의 죽음을 ‘관리’할 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선택을 함으로써 존엄을 추구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그러고 보면 환영받지 못하는 건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죽음이 동반하는 고립감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죽음, 고독한 죽음, 갑작스러운 죽음, 좀처럼 끝나지 않았던 죽음…. 죽음에 이르는 길은 다 다르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끝이다. 죽음이 끝이라는 사실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장의사로 일하는 케이틀린 도티가 죽음의 의례에 대해 다룬 에세이다. 도티는 100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 ‘장의사에게 물어보세요(Ask A Mortician)’의 운영자이기도 한데, 채널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죽음에 대해 어떤 미화도 숨김도 없이 전부 다 말하는 솔직하고 냉소적인 가운데 삐져나오는 유머가 그녀의 특징이다. 20대에 화장장에 취업해 장의업을 일생의 직업으로 결정한 도티의 장례 문화 보고서라 할 만한 이 책은 죽음을 다루는 가장 웃긴 책인 동시에 죽음을 생각하는 가장 예의 바른 책이다. 앞서 언급한 책들이 모두 존재하는 사람들의,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재하는 사람들을 위한 죽음을 소재로 한다면 이 책은 이미 죽은 사람들, 요컨대 비존재의 죽음을 다룬다. 비존재가 죽음인데 비존재의 죽음이라니? 말하지 않았나. 가장 웃기고 가장 예의 바른 책이라고.

시체가 재로 변하는 과정을 진두지휘하고 “인간 먼지”를 뒤집어쓴 채 오후 5시에 퇴근하는 장의사 도티의 ‘죽음’은 병원에서 위생적으로 관리되는 의학화된 죽음과 구분된다. 의학화된 죽음은 남아 있는 사람들의 감정적 동요를 최소화하고 떠나는 사람의 노출 또한 최소화한다. 우리는 죽음을 지켜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보는 건 언제나 죽음의 일부일 뿐이다. 마지막 순간에 이르면 죽음은 언제나 모습을 감춘다. 장의업의 발전은 가족들을 화장장에서 멀리 떼어 놓는 방법의 발전과 다르지 않다. 반면 장의사가 말하는 죽음에는 일말의 감춤도 없다. 도티는 확신한다. 죽음을 감추는 건 잘 죽는 데 장애물이 된다고. 죽음들에 노출될 때만 우리는 죽음이 나 자신만의 ‘고통’이 아니라 누구나 겪는 모두의 ‘삶’이라는 그 단순한 진실을 진실로 알게 될 것이며, 그 앎이 죽음을 슬픔에서 구해 줄 거라고.


박혜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