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 기독교 공동체의 사회적 유형>(에드윈 져지/런던: 틴데일 출판사)
내가 이 책을 처음 대한 것은 학부 학생 때였다. 책구경을 좋아하던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처음 접했는데, 그저 책 제목만 보았을 따름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30년 후 호주 시드니의 매쿼리대학교 초기기독교연구소에서 이 책의 저자를 만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로마 사회사(社會史) 전공의 저명한 교수인 에드윈 져지 교수는 신약성경과 초기 기독교회를 사회사적 방법론으로 접근해 신학자들이 보지 못한 새로운 안목을 제시했다.그는 이 책을 시작으로, <1세기 기독교인들의 사회적 특징>(2008), <로마세계에서의 초기 기독교>(2008), <예루살렘과 아테네>(2010) 등과 같은 역작을 남겼는데, 따지고 보면 1960년에 썼던 앞의 책을 발전시킨 것이다. 그는 초기(1세기) 기독교 공동체 구성원들의 사회적 신분에 대해 분석하고, 이들은 사회적 신분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혼합된 공동체’(mixed community)였다고 규명함으로서 거의 한 세기동안 유럽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였던 아돌프 다이스만의 입장, 곧 초기 기독교 구성원들은 절대 다수가 하층민이었다는 주장에 반기를 들었다. 그가 채용했던 방법론이 인물분석 방법(prosopography)이었다. 이 방법으로 바울 주변의 인물 40여 명을 통해 초기 기독교의 사회적 성격을 규명한 것이다. 그는 기독교는 헬라-로마사회의 종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었는데 신전이나 신상은 없으나 말씀(책)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상규 교수(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좌)
또 그 시대의 종교는 의식적(儀式的) 종교였으나, 기독교는 권면하고 가르치는 말씀의 종교였기에 초기 기독교를 ‘학문공동체’(scholastic community)라고 불렀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한국에서는 에클레시아를 어떻게 번역하고 있느냐고. 그래서 가르친 교(敎) 모일회(會), 곧 교회라고 번역하고 있다고 했더니 아주 잘된 번역이라고 했다. 물론 중국어 성경 역본을 따른 것이지만.
신약이나 초기 기독교회를 사회사적으로 접근하는 점에는 한계와 문제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신학자들이 보지 못하는 한 측면을 보는 안목을 제시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