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에 있는 체코형제복음교단(ECCB) 디아코니아 사무실에서 만난 이 단체 임원진. 크리스티나 암브로조바, 마르틴 발차르, 슈테판 브로드스키, 페트르 소발리크, 루치에 슬라모바(왼쪽부터).
“왜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을 돕는 겁니까.”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체코의 사역자들은 기가 막히다는 듯 일제히 웃음부터 터뜨렸다. 그러더니 웃음기를 거둔 한 사역자가 이런 답변을 내놓았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피란민을 섬겨야 할 이유 자체를 생각할 시간이 거의 없었어요.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전쟁 탓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어요.”
지난 1일(현지시간) 한국교회봉사단(한교봉·총재 김삼환 목사, 이사장 오정현 목사) 관계자들은 체코 프라하에 있는 체코형제복음교단(ECCB) 디아코니아 사무실에서 ECCB 임원진으로부터 이 같은 얘기를 들었다. 한교봉 관계자들은 우크라이나 피란민 구호를 위해 전날 체코에 도착했다. 이번 구호 활동은 한교봉이 주관하고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 류영모 목사)이 후원하는 행사다.
체코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지는 않지만 슬로바키아를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다. 한교봉 관계자들은 ECCB 임원진과 1시간 넘게 회의를 했다. ECCB에 따르면 현재 체코에 머무는 우크라이나 피란민은 30만명에 육박한다. ECCB는 체코교회 300여곳이 소속된 체코의 대표적인 교단으로,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곧바로 피란민 사역에 뛰어들었다. 전쟁 발발 첫날에만 ECCB 교회 46곳이 피란민 보금자리 사역을 벌이겠다고 선언했으며, 현재는 130여곳이 피란민 1200여명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있다. 독일을 비롯한 이웃의 많은 나라는 이런 ECCB의 사역을 거드는 중이다.
숙소 제공 외에도 ECCB가 벌이는 사역은 한두 개가 아니다. 전쟁이 장기화될 수도 있는 만큼 피란민들이 체코에서 삶의 터전을 다시 일굴 수 있도록 피란민을 상대로 체코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성도들은 직접 벼룩시장을 열어 피란민들이 입을 옷을 구하기도 한다. 피란민에게 각종 주방 기구를 지원하는 사업도 벌이고 있다. ECCB 디아코니아 행정 실무를 총괄하는 마르틴 발차르씨는 교단의 다채로운 사역들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ECCB는 체코 방송사들에 피란민을 위한 체코어 교육 콘텐츠를 제작해 달라고 요청해 놓은 상태입니다. 교회가 피란민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정부와도 긴밀히 논의하고 있어요. 어떤 교회는 피란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카페 창업 계획까지 세웠다고 하더군요.”
이날 회의의 목적은 ECCB를 상대로 한국교회나 세계교회가 피란민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ECCB 디아코니아 임원들은 “그런 질문엔 정확한 답변을 내놓기 힘들다”고 잘라 말했다. 피란민 사역이 이뤄지는 ‘현장’의 요구가 매번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화를 진행하면서 피란민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얼마간 가늠할 수 있었다. 가령 대다수 교회가 피란민을 위한 주방은 갖추고 있지만 세탁기는 충분히 보유하지 못하고 있었다. 노트북을 비롯한 전자 기기도 마찬가지다. 발차르씨는 “많은 피란민이 한 손엔 현금화가 가능한 물건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잡고 국경을 넘었다”며 “아이들 교육에 유용하면서 고국의 상황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전자 기기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ECCB를 통해 피란민 사역에 참여하는 성도는 대부분 자원봉사자다. 체코의 사역자들은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이들의 피로감이 누적될 수도 있음을 우려하고 있었다. ECCB는 전쟁이 길어지면 현재 총 400만명 수준인 우크라이나 피란민이 1000만명 규모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CCB 디아코니아에서 피란민 지원 프로그램 기획 업무를 담당하는 페트르 소발리크씨는 “자원봉사자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체코의 사역자들은 한국교회가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거듭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ECCB 이사인 슈테판 브로드스키씨는 “한국과 체코의 교회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관계이니 두 나라의 교회가 협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