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구호편지, 기적은 사랑을 품고 전쟁터 위에 피어난다

우크라 구호편지, 기적은 사랑을 품고 전쟁터 위에 피어난다

오인숙 2022-04-04 (월) 22:45 2년전  


구호품 트럭의 이동경로
 


25톤 트럭에 실린 구호품은 헝거리 데브라첸을 출발해 국경인 자호니를 지나 우크라이나로 들어갈 예정이다. 그 후 베레호베(Berehove)에서 구호품을 트럭에 옮기고 키이우(키예프)와 폴타바로 이동한다. 이 모든 과정은 우크라이나에서 조영선 선교사와 동역했던 발레리야(25) 청년이 꼼꼼하게 계획을 짰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로 남매를 다시 보내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여러 차례 의사를 물었다. “동생 지마(15)도 그렇고 여기서 조금 더 안전하게 있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발레리야의 의사는 확고했다. “구호품을 전달해서 나누는 일도 도와야 하고 지금 머물고 있는 서부로 피란 오는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봉사도 계속해야 하고 고아원에서도 할 일이 많아요.”

구호품을 실은 트럭이 헝가리 국경에 도착했다. 긴급구호팀 팀원들은 25톤 트럭에 ‘힘내세요, 한국교회와 헝가리교회가 함께 합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바라보며 응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25일 오후 3시(현지시간) 트럭이 국경을 넘어갔다. 내일 오전 한국행 비행기 탑승을 위해서는 부다페스트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부턴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 의탁하며 구호품이 잘 정달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트럭 운전사로부터 우크라이나 국경을 통과했다는 연락이 오지 않아 마음을 졸이던 오후 7시 49분. 스마트폰 벨소리가 울렸다. “방금 국경을 통과했습니다.” 차량으로 이동하던 구호팀 모두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외쳤다. “할렐루야!” 

우크라이나 동부 폴타바 성삼위일체교회(아나똘리 목사)에 도착한 구호품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제공


오후 8시 40분. 드디어 헝가리를 출발한 트럭과 우크라이나 동부를 출발한 두 트럭이 만났다. 구호품 전달 계획을 수립하고 시도한 지 12일 만에 이뤄진 기적 같은 일이다. 전시 상황인 우크라이나에는 오후 10시 이후 통행금지령이 내려져 있다. 1시간 20분 만에 24톤에 달하는 구호품을 옮겨 싣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현장을 들여다보고 계심을 믿었다. 믿음의 역사를 펼쳐보이듯 우크라이나 당국은 트럭에 실린 구호품 목록을 확인하곤 오후 10시가 넘어도 작업할 수 있도록 승인을 해줬다.

오후 11시 30분. 모든 작업을 마치고 26일 새벽 우크라이나 동부 폴타바로 출발할 예정이라는 연락을 받고야 눈을 감을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쓰러져 잠든 사이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반가운 소식이 도착했다. 폴타바 성삼위일체교회(아나똘리 목사) 예배당 안에 우리가 보낸 구호품과 우크라이나어로 ‘한국교회와 우크라이나교회가 함께 합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옮겨진 모습이었다. 전쟁통인 우크라이나 땅을 동서로 무려 20시간을 달려 도착한 소중한 물품들이다. 아나똘리 목사는 “하르키우, 수미 등 국경지역에선 지금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폴타바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그쪽으로 구호품을 더 많이 보낼 예정”이라고 전해왔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서 구호품이 전달되는 모습.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제공


수도 키이우(키예프)에서도 3톤 트럭 3대가 와서 구호품을 받아 갔다. 키이우에 도착하는 구호품들은 현지 교회의 세르게이 목사와 아나똘리 목사가 협력해 인근 지역 피란민들을 돕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랑을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전하려 작은 길을 냈다. 작은 길 위에 같은 마음을 지닌 이들의 사랑이 덧대어졌고 그 사랑은 생사를 넘나들며 이 시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들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돼 줄 것이라 믿는다.
[출처]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