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벧엘교회 오 세 광 목사
우리 주님 주시는 평강이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이 시간 “내 아들 압살롬아”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말씀을 나누기를 원한다.
이는 다윗이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말이다. 본문 사무엘하 18장에 보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죽는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에게 반역 하였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다윗은 비록 자신을 거슬러 반기를 든 패역한 아들(압살롬)이었지만, 그를(압살롬을) 사랑했다.
그래서 백성들을 싸움터에 내 보내면서 특별히 당부했다. 장군들에게 명령했다.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5절). 다윗의 군대는 요단강을 건너 에브라임 땅으로 들어가서 압살롬의 군대와 싸움을 벌였다. 그날의 전투가 치열했다. 다윗의 군대가 압살롬의 군대를 이겼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 것이다. 이김(승리)은 하나님께 있다. 압살롬은 머리숱이 많았다. 그런데 그 머리털이 나무에 걸이고, 그가 타고 있던 노새는 혼자 빠져 나갔다. 그러므로 압살롬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이게 되었다. 상수리나무에 매달린 압살롬을 요압장군이 가서 창으로 찔러 죽였다. 요압은 매달려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찔렀다(14~15절). 그러니까 급소를 찌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압살롬은 (그의)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런데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윗이 목 놓아 통곡했다. 본문 32~33절에 보면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主) 왕의 원수와 일어나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압살롬)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이는 죽었다는 말이다). 하니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쪽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윗은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보고에는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압살롬의 안부부터 물었다. 물론 다윗의 이와 같은 관점은 단순히 자기 자식에 대한 연민만은 아니었다. 그의(자신의) 죄악(밧세바) 사건 이후 피의 보복이 끊겨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였다. 곧 하나님의 심판이 돌이켜지기를 간절히 소원한 그(다윗)의 믿음이었다.
여하튼 다윗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압살롬의 생사(生死)였다. 압살롬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32절), 다윗이 심히 마음이 아파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통곡했다. 다윗(에게)는 아들(압살롬)을 미워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었지만 (자기에게 반기를 들고 생명을 위협함), 그 아들(압살롬)이 반역자와 원수가 아니었다. 그저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압살롬은 바로 하나님께 반기를 들었던 우리들의 모습(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권위에 대하여 반기를 들고, 반역하였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사랑해 주셨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못한 우리들을 위하여 죽으셨다. 그럼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셨다. 차라리 자기(自己)가 압살롬을 대신하여 죽었더면 좋았을 것이라는 다윗의 말에서 우리는 아들을 향한 아버지로서의 다윗의 사랑을 볼 수 있다. 반역했던 우리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컸으면 하나님께서 대신 죽으시려고 하셨을까? 또 실제로 그렇게 죽으셨을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저질렀던 모든 반역과 죄를 덮어 주고 용서해 주셨다. 그 사랑에 응답하는(보답하는) 삶을 살기를 축복한다.
문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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