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리스도의 복음(26): “주님 안에서 자랑하자” (고후10장)
Let him glory in the Lord.
본문: 고후 10:1~18
요절: “오직 자랑하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할지니 자기를 추천하는 자가
인정받지 아니하고 주님께서 추천하시는 자가 인정받느니라.”
(고후 10:17~18)
주제: 주님의 이름을 자랑하며, 주님께만 존귀와 영광을 돌리자
교독문: 8번(시14편), 예배의 부름: 신 8:3-4
찬송: 38장(통 없음), 380장(통 424장), 384장(통 434장)
일자: 2021년 6월 27일 주일 (성신강림절 후 다섯 번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겟세마네 교회)
6월 마지막 주일을 맞이합니다. 이달을 “애국의 달”로 지키면서 호국 장병들의 희생을 추모하며, 애국하신 분들을 생각하며 나라의 안보와 미래를 위해 기도해 오고 있습니다. 지난 목요일(6월 18일) 우남 네트워크(공동대표: 황준석목사,박명수 교수) 미래비전포럼이 열렸던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1908~1932년) 의사 기념관(서울 서초구 양재 시민의 숲, 1988년 10월 개관)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22세인 1930년 "대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丈夫出家生不還)"이라는 글귀를 남기고 집을 떠나 중국으로 건너가다가 평북 선천에서 체포되어 한달 반을 옥고 치른 후 중국 상하이에서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채소 장사를 하였답니다. 그는 1931년 겨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령인 김구선생을 찾아, 독립운동에 헌신할 각오임을 호소해 그가 주도하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했고. 김구의 지도하에 1932년 4월 29일 상하이의 홍커우 공원(현 루쉰 공원)에서 열리는 일본 천황의 생일연(천장절)과 상하이 점령 전승 기념 행사를 하던 단상에 도시락으로 위장한 폭탄을 투척하면서 숨겨두었던 태극기를 꺼내 흔들면서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 결과 상하이 파견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사다지 등이 죽고, 총영사 무라이는 중상,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기치사부로 중장은 실명되었고, 제9사단장 우에다 겐키치 중장은 다리 절단 중상을 당했으며, 주 중국 공사 시게미쓰 마모루는 한쪽 다리가 잘려 절름발이가 되었답니다. 당시 중국의 국민당 지도자였던 장제스(蔣介石, 1887~1975년)는 “중국의 100만이 넘는 대군도 해내지 못한 일을 조선인 청년 윤봉길이가 해냈다”고 윤봉길을 극찬했습니다. 체포된 윤봉길은 가혹한 심문과 고문을 받고, 1932년 11월에 일본 오사카로 후송되었고, 같은 해 12월 19일 (24세) 가나자와에서 총살형을 당했습니다.
초대대통령 이승만 정부가 1953년 전국적으로 조사한 3·1운동과 일본 관동(關東·간토)대지진 피살자 명부에 의하면 '3·1운동시 피살자 명부(630명)',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290명)',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65권·22만9천781명)' 등이 있을 만큼 많은 애국자들이 계십니다. 시간 나시는대로 순국자들 기념관들을 자녀들과 함께 순방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서울 서대문 독립문(옛 영은문), 독립공원, 서대문형무소(감옥), 인사동 태화빌딩(태화관, 3.1운동 발상지), 탑골공원, 고성 화진포 이승만별장, 배제기념관, 제주 이승만별장, 구미 박정희대통령 기념관, 남산공원의 안중근장군 기념관, 함평의 상해임시정부 기념관, 천안 독립기념관, 삼전도비(잠실 석촌호수), 연세대 광혜원 박물관과 핀슨관의 윤동주 기념관, 용산 전쟁기념관, 기독교박물관(숭실대, 백석대, 전주대, 호남신대, 인천, 부산, 공주, 이천), 신안 문준경전도사 순교기념관, 제주 이기풍 기념관, 여수 손양원기념관, 주기철목사 기념관(진해 웅천), 전남 영광 순교현장(염산교회, 야월교회, 법성교회), 대구 낙동강 다부동전투 현장, 인천 월미도(9.15 인천상륙작전 현장), 판문점, DMZ, 휴전선, 땅굴 등 둘러봅시다. 그리고 차세대 젊은이들에게 역사공부(신 32:8)와 독립정신 및 애국심을 물려주어 더 많은 애국 시민들이 배출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고린도후서 10장을 통해 “영적 전쟁”에 대해 강해를 하겠습니다. 에베소서 6장 11-18절에 나오는 마귀의 간계들을 능히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the whole armour of God)를 기억합시다. 영적인 사악함과 싸우기 위해 (1) 구원의 투구 (2) 진리의 허리띠 (3) 의의 흉갑 (4) 믿음의 방패 (5) 성령의 검(하나님의 말씀) (6) 화평의 복음으로 예비한 신 (7) 무시로 기도함입니다. 항상 영적 전신갑주로 무장하며 승리합시다.
우리가 영적 전쟁을 위해 항상 무장하자(고후 10:1-6)
1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함과 부드러움을 힘입어 직접 너희에게 간청하노라. 내가 너희와 함께 너희 가운데 있으면 비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를 향해 담대하지만 2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그 확신을 가지고 너희를 담대히 대하지 않게 하라. 그러나 우리를 육신에 따라 걷는 자로 생각하는 자들에 대하여는 내가 그런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대할 줄로 생각하노라. 3 비록 우리가 육신 안에서 걸으나 육신을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4 (우리의 전쟁 무기는 육신에 속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통해 강력하여 강한 요새들도 무너뜨리느니라.) 5 우리는 상상하는 것과 또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높은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며 6 너희의 순종이 이루어질 때에 모든 불순종을 응징하려고 준비되어 있노라.
1-2절. 고후 10-12장은 사도직에 대한 바울의 변증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을 대면할 때 겸손했다고 말합니다. 겸손은 사람을 대면할 때 나타납니다. 위선적 겸손도 없지 않겠지만, 사람을 오래 대하다 보면 그가 교만한지 겸손하지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떠나 있을 때에도 그리스도의 온유와 너그러움을 가지고 권면하기를 원합니다. ‘관용’이라는 원어(ἐπιεικεία 에피에이케이아)도 ‘온유, 너그러움’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겸손과 온유는 연관된 말입니다(마 11:29). 겸손한 자(ταπεινὸς τῇ καρδία, lowly in heart)는 온유(meek, πρᾷός)하고 온유한 사람은 겸손합니다. 온유(프라오스, 프라에이스)란 말은 야생마와 같이 불순종하고 천방지축의 인격이 길들여져서 준마처럼 순종 잘하고 주인을 위해 충성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절 시작에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함과 부드러움을 힘입어 직접 너희에게 간청하노라.” 하면서 고린도 교인들 중 신실한 제직들에게는 간청하지만 육신을 따라 걷는 이들에 대해서는 담대함으로 권면합니다. 이들은 거짓 교사들로 바울을 육체대로 행하는 자라고 비난합니다. ‘육신을 따라 걷는다’는 말은 인간적, 육신적 생각이나 세상적 욕심이나 명예심을 가지고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이 육체대로 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를 그렇게 비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세상에서 잘못된 비난을 받을 각오를 항상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3-4절. “비록 우리가 육신 안에서 걸으나 육신을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전쟁 무기는 육신에 속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통해 강력하여 강한 요새들도 무너뜨리느니라.)” 우리는 다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는 육신적 생각이나 세상적 욕심과 명예심이 없지 않겠지만, 주님의 종들은 육신대로 싸우지 않습니다. 즉 육신의 생각과 세상적 욕심에 이끌려 행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고자 하는 새 생활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롬 7:12, 엡 5:9). 복음 사역은 죄악과 어둠과의 전쟁, 사탄과 벨리알과]의 전쟁, 그리고 악한 자들과의 전쟁입니다. 그때 주님의 종들의 무기는 육신적 힘이나 육신적 지혜와 생각이나 육신적 수단과 방법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강한 요새를 파멸하는 강한 능력입니다. 개역에서 ‘하나님 앞에서’라는 원어(토 데오 τῷ Θεῳ)͂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through God’(KJV)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나아 보입니다. ‘강한 요새’는 인간의 생각을 가리킵니다. 구원받기 전의 인간의 무지하고 불경건한 생각은 심히 완고합니다. 그것은 견고한 진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깨뜨리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ἡ δύναμις 두나미스)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Οὐ γὰρ ἐπαισχύνομαι τὸ εὐαγγέλιον τοῦ Χριστοῦ· δύναμις)입니다(롬 1:16). 전도는 하나님의 영혼 구원의 방법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 능력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강한 요새를 파괴하는 강한 능력입니다.
5-6절. “우리는 상상하는 것과 또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높은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며 너희의 순종이 이루어질 때에 모든 불순종을 응징하려고 준비되어 있노라.”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적 이론들, 즉 세상의 잡다한 인간의 사상들을 다 파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그 모든 것을 다 파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요 지식의 근본이며(잠 1:7; 9:10) 가장 중요한 복인 무궁한 생명의 길입니다(시 133:3, 요 3:16, 17:3).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 지식을 대항하여 높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이것들을 다 깨뜨립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복음을 통해 인간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킵니다. 복음은 죄인들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입니다. 죄인들은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복종이 온전히 된다는 말은 부족한 복종이 있고 온전한 복종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복종의 정도를 나타냅니다. 그것은 성화(聖化 sanctification = ὁ ἁγιασμός 호 하기아스모스)의 과정입니다. 그것은 불순종하던 옛사람의 요소들이 점점 죽고 순종하는 새사람의 요소들이 점점 살아나는 과정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온전히 복종할 때, 모든 복종치 않는 것들은 징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2. 바울의 사도직 변호(고후 10:7-18)
7 너희는 겉모습대로 사물을 보느냐?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스스로 믿을진대 이것 즉 자기가 그리스도의 사람인 것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람인 것을 스스로 다시 생각할지니라. 8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권위는 너희를 무너뜨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요, 세우라고 주신 것인즉 그것에 대하여 내가 조금 더 자랑해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니 9 이것은 내가 편지로 너희를 무섭게 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10 그들이 말하기를, 그의 편지는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함께할 때는 약하고 그의 말도 형편없다, 하는도다. 11 그런 자는 이것을 생각할지니 곧 떠나 있을 때에 편지로 말하는 우리가 어떠함같이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우리도 그와 같으리라는 것이라. 12 우리는 자기 자신을 추천하는 자들과 감히 한 패가 되거나 혹은 그들과 우리 자신을 비교하지 아니하노라. 오직 그들은 자기들을 기준으로 자기들을 판단하며 자기들 가운데서 자기들을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13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분량 밖의 것들을 자랑하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규칙의 분량에 따라 자랑하려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다다른 분량이라. 14 우리는 마치 너희에게 다다르지 아니한 것 같이 우리의 분량을 넘어 뻗어나가지 아니하노니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가운데 너희에게도 이르렀느니라. 15 우리는 우리의 분량 밖의 것들 곧 다른 사람들이 수고한 것들을 자랑하지 아니하며 오직 너희의 믿음이 자라날 때에 우리의 규칙에 따라 우리가 너희를 통하여 넘치도록 확장되기를 바라노니 16 이것은 너희를 넘어선 지역들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이미 예비되어 우리 손에 들어온 것들을 다른 사람의 구획선 안에서 자랑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17 오직 자랑하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할지니 18 자기를 추천하는 자가 인정받지 아니하고 주님께서 추천하시는 자가 인정받느니라.
7절. “너희는 겉모습대로 사물을 보느냐?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스스로 믿을진대 이것 즉 자기가 그리스도의 사람인 것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람인 것을 스스로 다시 생각할지니라.”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을 외모로 평가하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외모로 보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삼상 16:7). 사람의 가치는 그의 외적 조건들에 있지 않고 그의 내적, 영적, 신앙적 상태에 있습니다. 요즘 스펙을 따집니다. 스펙(spec)이란 영어단어 specification의 준말인데,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의 학력, 학점, 토익 점수, 추천서, 봉사활등 등의 업적을 말합니다. 그러나 인터뷰 시험에서는 그 사람의 예의, 인성, 내적 성숙을 많이 관찰합니다.
8-9절.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권위는 너희를 무너뜨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요, 세우라고 주신 것인즉 그것에 대하여 내가 조금 더 자랑해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니 이것은 내가 편지로 너희를 무섭게 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께 인정받는 인물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영적 권세는 교인들을 허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의 일꾼들에게도 영적 권위가 어느 정도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영혼들을 죄에서 건져내고 구원받은 자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권세입니다. 전도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요 목회는 구원받은 자들을 돌보며 양육하는 일입니다.
10-11절. “그들이 말하기를, 그의 편지는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함께할 때는 약하고 그의 말도 형편없다 For his letters, 6 say they, are weighty and powerful; but his bodily presence is weak, and his speech contemptible. 하는도다. 그런 자는 이것을 생각할지니 곧 떠나 있을 때에 편지로 말하는 우리가 어떠함같이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우리도 그와 같으리라는 것이라.” 사도 바울은 몸이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바울에 대해 그의 편지는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고 말했습니다. 2세기 '바울과 테크라의 행적'(The Acts of Paul and Thecla)이라는 한 외경에 묘사된 바울은 “대머리와 휜 다리에 눈썹은 서로 맞닿고 코는 매부리에 단신의 다부진 체구를 가진 호감에 찬 사나이, 그는 인간의 모습에 천사의 얼굴을 가진 자이다.”고 묘사된 것인데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 모르나 바울의 전문가들은 대체로 바울의 외모는 “추남”이었답니다. 키가 150센티 정도이며 말도 잘못하는 인물이었답니다. 드로아에서 밤중까지 성경을 강론하던 중 유두고가 창에 걸터 앉아 졸다가 삼층에서 떨어져 죽었으나 바울이 내려가서 그 청년을 다시 살려준 일도 있었습니다(행 20:6-12). 그러나 바울의 내면에는 하나님의 귀한 은혜가 담겨 있었고 하나님의 풍성한 진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12-14절. “우리는 자기 자신을 추천하는 자들과 감히 한 패가 되거나 혹은 그들과 우리 자신을 비교하지 아니하노라. 오직 그들은 자기들을 기준으로 자기들을 판단하며 자기들 가운데서 자기들을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분량 밖의 것들을 자랑하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규칙의 분량에 따라 자랑하려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다다른 분량이라. 우리는 마치 너희에게 다다르지 아니한 것 같이 우리의 분량을 넘어 뻗어나가지 아니하노니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가운데 너희에게도 이르렀느니라.” 어리석은 자들은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 스스로 비교하고 평가하며 칭찬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고 그런 자들과 감히 비교될 수도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이방 세계에 전하다가 고린도에까지 갔던 것이므로 그의 자랑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한계의 분량에 맞습니다. 다른 이는 몰라도 그 교회의 개척자인 바울은 그 교회로 인하여 기뻐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15-18절. “우리는 우리의 분량 밖의 것들 곧 다른 사람들이 수고한 것들을 자랑하지 아니하며 오직 너희의 믿음이 자라날 때에 우리의 규칙에 따라 우리가 너희를 통하여 넘치도록 확장되기를 바라노니 이것은 너희를 넘어선 지역들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이미 예비되어 우리 손에 들어온 것들을 다른 사람의 구획선 안에서 자랑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오직 자랑하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할지니 자기를 추천하는 자가 인정받지 아니하고 주님께서 추천하시는 자가 인정받느니라.” 바울은 복음의 계속적 확장을 위한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너희를 통하여 넘치도록 확장되기를 바라노니’는 말은 ‘너희에 의해 풍성히 넓어진다’는 말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넓어진다는 것은 그의 마음과 자랑과 전도 영역이 넓어진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주님의 은혜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자랑은 주님밖에 없고, 주님의 은혜와 주님의 능력밖에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자가 참으로 주님 앞에서 인정받는 일꾼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칭찬하는 자가 되지 말고 주님께 칭찬 듣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성경 지식과 믿음과 인품을 구비한 자는 주님께 칭찬을 들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자신을 지나치게 자랑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님께 칭찬받는 자가 되기를 소원하며 성경을 믿고 실천하여 강한 주님의 군사가 되도록 힘써 행합시다. 어떤 자랑할 것이 있다면 예수님을 자랑하고, 우리 교회를 자랑하고, 우리 목사님을 자랑하고, 우리 성도들을 자랑합시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없이 빛도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없이 빛도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찬 323장 3절)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저희들로 하여금 주님 안에서 자랑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추천하시는 인정받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도 잘 관리하게 하사 주님으로부터 인정받게 하옵소서. 우리나라를 사랑하시며 호국장병들, 애국지사들, 순국자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애국하게 하옵소서. 대한민국 청년들 가운데 많은 애국자들이 배출되게 하옵소서. 남한, 북한이 자유민주주의로 통일이 되어 세계에 복음을 수출하는 나라로 축복하옵소서. 코로나 재앙으로부터 구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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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하루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1) 대한민국을 보우하시며 매 순간 동행의 축복을 주옵소서!
(2)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여 성경책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3) 예수님을 닮는 믿음, 소망, 사랑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6월28일(월) 찬송71장(통 438장), 73장(통 73장) 시 139편(무소부재)
29일(화) 71장(통 438장), 73장(통 73장) 시 140편(악에서 구하소서)
30일(수) 68장(통 32장), 67장(통 31장) 시 141편(내 입술의 문을)
7월 1일(목) 68장(통 32장), 67장(통 31장) 시 142편(내 영의 상할 때)
2일(금) 58장(통 66장), 60장(통 67장) 시 143편(주를 향해 손을 펴고)
3일(토) 58장(통 66장), 60장(통 67장) 시 144편(여호와는 나의 사랑)
이창희 기자 <저작권자 ⓒ 헤드라인코리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