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드라인코리아저널
발행인 문 형 봉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피할 수 없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지고, 믿었던 사람의 행동에 깊은 실망을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그 상처가 오래 남아 분노와 원망으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상대를 미워하며 붙잡고 있는 그 감정이, 결국 가장 오래 괴롭히는 대상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용서는 쉽지 않다. 특히 억울함이 클수록, 상처가 깊을수록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용서를 ‘상대방을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용서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용서는 상대를 풀어주는 행위이기 이전에,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길이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마태복음 6:14). 이 말씀은 용서가 단순한 도덕적 선택이 아니라, 신앙과 삶의 본질적인 태도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은 존재이기에 끊임없이 실수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을 향한 용서 역시 선택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왜 용서는 이렇게까지 중요한가. 단지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실제로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와 원망을 지속적으로 붙잡고 있을 때, 우리의 몸은 그 감정을 ‘위험 상태’로 인식한다. 이때 활성화되는 것이 바로 스트레스 반응이다.
스트레스 반응이 지속되면 우리 몸에서는 코르티솔과 같은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단기적으로는 위기 대응에 도움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염증 반응을 증가시키며, 심혈관계에 부담을 준다.
실제로 만성적인 분노와 억눌린 감정은 고혈압, 심혈관 질환, 수면 장애와 같은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분노를 계속해서 떠올리고 곱씹는 상태는 반추라고 불리는데, 이는 우울과 불안을 강화시키고 신체적 피로까지 유발한다. 결국 용서하지 못하는 상태는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를 서서히 소모시키는 과정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사실을 떠올려 보면, 성경의 가르침이 단지 영적인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잠언 14:30)는 말씀은, 마음의 상태가 곧 신체의 건강과 연결되어 있음을 매우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오래전 기록된 이 말씀이 오늘날 의학적 관점과도 맞닿아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사도 바울은 또 이렇게 권면한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에베소서 4:32). 이 말씀에서 중요한 기준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용서하셨는가’이다. 조건을 따져서가 아니라, 먼저 사랑으로 품으셨다는 점이다. 우리가 받은 용서를 기억할 때, 우리는 비로소 다른 사람을 향해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 속 용서는 감정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용서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마음이 안 된다”는 말이 자연스럽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결단’이다. 용서는 감정이 준비된 후에 하는 것이 아니라, 결단을 통해 시작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이 따라오는 과정이다.
또한 용서는 단번에 완성되는 일이 아니라 반복되는 선택이다. 어떤 상처는 한 번의 결심으로 끝나지 않는다. 같은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다시 내려놓아야 한다. 그 과정이 때로는 지치고 버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반복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점점 가벼워진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로새서 3:13). 여기서 ‘용납한다’는 것은 상대의 부족함까지 받아들이는 태도를 의미한다. 결국 용서는 완벽한 사람들 사이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택이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할 때, 그 감정은 우리 안에서 계속 자라난다.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낳고, 상처는 점점 더 깊어진다. 그러나 용서를 선택하는 순간, 그 고리는 끊어진다. 물론 상황이 즉시 바뀌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 마음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 5:44)는 말씀은 인간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요구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가 감정에 끌려 사는 존재가 아니라, 선택을 통해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존재임을 일깨운다.
용서하면서 산다는 것은 결코 약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강한 선택이다. 상처를 붙잡고 있는 것은 본능에 가깝지만, 그것을 내려놓는 것은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국 우리를 더 자유롭고, 더 건강한 삶으로 이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더더욱 용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오늘도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무겁다면, 완벽한 용서를 하려 하기보다 작은 결단 하나부터 시작해보자. “나는 이 감정에 묶여 있지 않겠다”고. 용서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더 가볍고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그 변화는, 우리의 마음뿐 아니라 우리의 몸까지도 살려내는 길이 된다.
문 형 봉 (京南)
전) 대한기자협회 상임중앙위원
월간 KNS뉴스통신 사장
현) 헤드라인코리아저널 발행인
식약저널 편집인
특수경찰신문 편집주간
더조은신문 편집인
한국신문방송총연합회 부회장/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