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웅교수 시론] 고령자 운전면허 규제, 이동권 침해 논란

[최충웅교수 시론] 고령자 운전면허 규제, 이동권 침해 논란

오인숙 2024-05-24 (금) 23:23 4개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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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웅 언론학 박사
 

정부가 고령자에 대한 '조건부 운전면허'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가 논란이 일자 하루 만에 진화에 나섰다.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은 20일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 대책'에서 고령자 운전능력 평가를 통한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조건부 면허제는 야간운전 금지, 고속도로 운전 금지, 속도제한 등을 조건으로 면허를 허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곧바로 고령자 이동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반발이 커지자 자료에서 '고령 운전자'를 '고위험'으로 수정하고, 발표 하루 만에 "특정 연령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며 발표 내용을 서둘러 번복했다. 정치권까지 가세하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 고령화 시대에 필요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일률적 기준 적용 문제점과 대중교통이 없는 지역에선 교통약자인 어르신들의 이동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번에 발표한 자료엔 고령자 기준 연령을 별도로 표시하지 않았지만, 인용한 통계를 보면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65세로 잡고 있다. 회갑잔치가 없어진 요즘 65세는 건강하고 활기찬 노년층이 많아진 상황인데, 단지 숫자인 나이를 기준으로 운전면허를 제한하겠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발상이라는 비판이다. 더 연로한 부모를 부양하는 고령자나 생계형 고령 운전자, 교통 오지에 사는 운전자에 대한 대책도 고려되지 않아 반발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500만 명에 가까워지면서 운전면허 갱신자격 강화 등 제도개선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는 점도 사실이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고령 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는 4만 건에 육박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는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 인구 진입으로 65세 이상 운전자 수 자체가 늘어난 영향도 적잖다. 사실 지난해 가장 많은 교통사고를 일으킨 가해 운전자 연령은 65세 이상이 아니라 50대였다고 한다.

고려해야 할 점은 요즘 나이만으로 사람의 인지 및 반응 능력을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젊은 사람 못지않은 노년이 흔하기 때문이다. 노인 교통사고를 줄여야 한다는 정책 취지는 이해하지만,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운전을 제한하는 정책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고령층을 잠재적 교통사고 가해자로 단정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또한 지역 현실을 외면하고 일방적으로 제도를 시행하면 부작용이 초래된다. 특히 고령층 비중이 높은 강원도의 경우 대상자가 많아 노인 교통 사각지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버스나 택시도 안 다니는 곳에 사는 어르신들까지 운전을 제한할 경우 적잖은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생계형 고령 운전자 대책도 심각한 상황이다.

사실 고령자 운전 제한은 공감이 높은 이슈다. 인지·반응력의 자연스러운 감퇴에 따른 빈번한 사고는 전 세계가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고령 운전자의 과실로 인한 교통사고가 늘고 있다. 어느 여든이 넘은 고령자 경우는 하체가 약해져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가 힘들다며 운전을 포기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노화될수록 집중력과 순발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시력도 약해져 차로를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공은 98세에 이틀 연속 사고를 내자 면허를 반납했다.

고령자 운전에 대한 일괄적으로 제한하는 규제는 고령자들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 단지 나이가 많기 때문에 '늙음'에 가해지는 벌(罰)이라는 규제로 받아들일 '정서적 학대' 감정을 느낄수도 있어 예민하게 반응할 수도 있다. 일률적인 제한은 분명 과도하다. 하지만 운전 능력을 평가해 조건부 면허제를 도입하고 시행 중인 면허 자진 반납을 지속하겠다는 정책은 고민해볼 만하다. 기존 '면허반납제'나 '적성검사' 등이 효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동권만 앞세워 고령자 운전을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건강수명이 크게 늘고 있는 만큼 제한 연령을 완화하고 타 이동수단에 대한 인센티브를 충분히 주는 등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경우 70세 이상 운전자는 운전면허 재심사를 받는다. 의료 진단에 따라 주행능력 평가도 치러야 한다. 일리노이주의 경우에는 75세 이상은 4년, 81세에서 86세 이상은 2년, 87세 이상은 매년 운전면허를 갱신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70세 이상은 고령자 강습을 수강하고 75세 이상은 인지기능검사와 운전기능검사를 받아야 한다. 2022년에는 비상제동장치가 탑재된 차량만 운전할 수 있는 한정면허도 신설됐다.

호주에선 75세 이상 운전자는 매년 운전이 가능한지 검사하는 의료 평가와 운전실기 평가를 모두 받아야 면허증 갱신이 가능하다. 운전자에 따라 지역 내 운전으로 제한된 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다. 뉴질랜드는 75세 이상 2년 주기로 면허를 갱신해야 하며, 의사의 운전면허용 진단서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의학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도로안전시험을 통과해야 운전이 가능하다.

고령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면서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당장은 운전면허 적성검사의 내실화로 형식적인 검사가 아니라, 실제 주행 능력이나 기능 실력을 검증해야 한다. 고령자의 운전면허 자진 반납 제도의 실효성도 높여야 한다. 지난해 면허를 반납한 고령자는 대상자의 2.4%에 불과하다. 면허 반납에 따른 혜택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비상시 차량을 자동으로 제동하는 보조 장치 지원도 검토할 만하다.

이번 고령자 운전면허 규제 발표처럼 불쑥 발표했다가 다시 뒤집으면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민감한 정책 사안인 고위험 운전 능력 평가 방법과 조건 부여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충분한 여론 수렴과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 국민적 공감을 얻어 발표해야 할 일이다.

[최충웅 약력]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경남대 석좌교수
YTN 매체비평 출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예오락방송 특별 위원장
방송위원회(보도교양/연예오락)심의 위원장
언론중재위원회 위원
KBS 예능국장·TV제작국장·총국장·정책실장·편성실장
중앙일보·동양방송(TBC) TV제작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