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인 문 형 봉
아침에 창문을 열고 바깥을 바라보면 세상은 어제와 다르지 않은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는 듯 보이지만, 그 하루를 맞이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른 빛과 결을 드러낸다. 어떤 날은 이유 없이 숨이 가볍고 발걸음이 느긋해지지만, 또 어떤 날은 특별한 까닭이 없음에도 마음이 거칠어져 사소한 일에도 쉽게 흔들리곤 한다.
우리는 그렇게 저마다 다른 하루를 품고 살아가며, 결국 각자의 세상을 만들어 간다. 아름다운 세상과 추한 세상은 멀리 떨어져 있거나 분명히 갈라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사람의 생각과 태도 사이에서 조용히 갈라지는 길과도 같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완전히 버려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느 한쪽에 영원히 머무를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우리는 매일의 선택과 마음가짐 속에서 조금씩 그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간다.
삶이 무겁게 느껴질수록 사람들은 자연스레 바깥을 바라보게 된다. 환경을 탓하고, 사람을 탓하며, 시대가 이러하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차분히 뒤돌아보면, 삶의 무게는 외부에서 주어지기보다 생각에서 싹트고 태도 속에서 점점 깊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루를 넘기기 위한 요령과 처세는 때로 필요할지 모르나, 그것만으로 인생 전체를 건널 수는 없다. 편해 보이는 삶의 이면에는 조금씩 닳아가는 마음과 스스로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허기가 남는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관계 안에 놓인다. 부모와 형제, 친구와 이웃, 그리고 말없이 스쳐 가는 수많은 얼굴들까지도 모두 삶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나누며 살아왔는지는 결국 그 사람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거울이 된다. 사람은 결코 조건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직함이나 재산, 눈에 보이는 배경은 시간이 흐를수록 흐릿해지고, 끝내 남는 것은 어떤 태도로 사람을 대했는지, 관계 앞에서 어떤 마음을 내보였는지다.
요즘은 관계마저도 서둘러 판단되고 계산되는 경우가 많다. 누가 도움이 되는지, 누가 쓸모가 있는지부터 따져보며 인연을 맺으려 하지만, 계산으로 시작된 관계는 계산이 끝나는 순간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반대로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고 조급함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 곁에는 설명할 수 없는 신뢰가 쌓이고, 그 신뢰 위에서 관계는 오래 머문다.
겉으로 보이는 삶은 대개 단정하고 안정되어 보이지만, 그 안쪽을 들여다보면 누구에게나 말하지 못한 불면의 밤과 가벼이 털어낼 수 없는 한숨이 있다. 물 위에서는 우아하고 고요해 보이는 백조도 물 아래에서는 쉼 없이 발을 움직이듯, 사람의 삶 역시 드러난 모습과 보이지 않는 수고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흘러간다. 그래서 타인의 삶을 쉽게 판단하기보다, 그 안에 있을지 모를 무게를 헤아리는 일이 필요해진다.
돌이켜보면 지나온 날들 속에는 아쉬움이 남는 장면들이 있다. 조금 더 기다렸더라면 좋았을 말과, 조금 더 참았더라면 달라졌을 감정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때는 알지 못했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삶의 지혜란 언제나 그렇게 한 발 늦게 도착하여, 이미 지나온 길을 조용히 비추어 준다.
세상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사람들은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많이 가지려 애쓴다. 그러나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 남는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손에 쥐었느냐가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떤 태도로 견디며 살아왔느냐다.
아름다운 세상은 멀리 있거나 특별한 곳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고른 말 한마디와 오늘 내가 내려놓은 욕심 하나,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건넨 조용한 배려 속에서 아주 작게 모습을 드러낸다.
이 글은 어떤 결론을 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루의 끝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묻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을 지나온 나는 무엇을 지키며 살아왔는지, 무엇을 내려놓으며 여기까지 걸어왔는지, 그리고 내일의 나는 조금은 다른 세상에 머물 수 있을지를.
문 형 봉 (京南)
전) 대한기자협회 상임중앙위원
월간 KNS뉴스통신 사장
현) 헤드라인코리아저널 발행인
식약저널 편집인
특수경찰신문 편집주간
더조은신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