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
인간의 욕망은 두 가지가 있다. 가지려고 하는 욕망과 되려고 하는 욕망이다. 재물과 권력으로 대변되는 이 두 가지 욕망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가지려고 또 되려고 하는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욕망은 어디서 오는가? 결국 내 모든 이기심과 욕구를 제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Icaros)는 너무 높이 날지 말라는 아버지의 당부를 무시하고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는 높이 올라갈수록 더 높이 오르고 싶어졌다. “저 태양까지 가보는 거야” 태양에 가까워지자 밀랍이 녹아버려 바다로 곤두박질해 죽고 말았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이니 욕망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불행은 욕망을 조절하지 못하고 끝없이 오르려는 데서 생긴다.
노자(老子)는 말한다.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춤을 알면 위태롭지 않아 오래갈 수 있다.(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욕되고 위태로운 길을 가지 않으려면 자신의 위치와 상황을 잘 헤아려야 한다. 자신의 자리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하고, 자신의 역량보다 조금 모자란 자리에 앉을 줄 알아야 한다. 탐욕이 지나치면 과분(過分)한 행동이 된다.
과거 엣 선배들은 허리띠를 졸라 매며 애써 끌어 모으는 것이 미덕(美德)일 때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8.15해방 정국 그리고 6.25동란을 거치고 1960, 70년대까지만 해도 근검(勤儉)과 절약(節約)이 삶의 도덕 가치였다. 농본국가요 1인당 국민소득이 몇 백 불일 때, 그리고 아무 대책 없이 자녀를 양산할 때는 먹는 것이 당면 과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발전한 국가에서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돈도 필요하고 명예도 필요하고 권력도 필요하다. 때에 따라서는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필요함 때문에 남 보다 더 가져야만 한다는 강박감(强迫感) 때문에 사람들은 스스로 욕망의 덫에 걸려 불행한 삶을 자초하다가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곤 한다. 바로 절제를 잊고 사는 인간 최후의 모습이다.
세상은 많은 것을 가져야만 다 능사(能事)는 아니다. 다만 자신의 욕망을 조절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질을 바라보는 높이와 삶의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 하여야 한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웰빙(well-being)이 아니다. 짐승들이나 가축들도 얼마든지 사람들처럼 충분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그러나 어찌 인간이라 할 수가 있겠는가.
현대를 살아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 수단(手段)과 방법을 동원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고 손해를 입히는 브러커(broker)들이 우리의 주변에 너무나 많다. 늘 옆에서 협력하고 도와주고 헌신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인격적, 시간적, 경제적인 손해를 보는 일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브로커”라고 하면 일단 뭔가 뒤가 구린 짓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물론 브로커가 다 그렇지만은 않겠지만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큰돈을 벌 수 있다느니, 어디에 지하자금이 100억이 있는데 수수료 및 행정비만 지출하면 그 돈을 사용할 수 있다느니, 어디에 금괴가 묻혀 있다느니 하면서 거짓말만 일삼는 브로커들을 가끔 만나 보게 된다. 어쩌면 대한민국은 “브로커(broker) 전성시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오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을 읽어보면 돈과 명예 등 갈구했던 많은 것들이 공허하며 허망(虛妄)한 것임을 알게 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으로 그 결론은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대답을 했다.
21세기라는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준다. 이 말은 우리를 기억 저편에 누워있는 풀 위에 쏟아졌던 이슬비와 햇빛과 별빛과 같은 아름다운 생각을 가져다준다.
섹스피어(William Shakespeare)는 “인생(人生)은 무대 위에 올린 배우이며 사람의 삶에 연극 같은 삶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지나간 과거에 대해, 물질에 대해, 쓸모없는 일에 왜 그토록 연연하고, 집착하고 슬퍼하는가? 우리들의 인생을 보다 인생답게 살아가려면 사랑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인도의 성자 간디는 말하기를 “예수를 좋아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싫어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스스로를 예수의 제자라 부르면서도 예수를 닮으려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말 했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이용만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라며 현대 교회를 우려했고 질타했다.
혹시 우리 주변에 “예수를 팔아먹는 브로커(broker)”가 없는지 살펴 볼 일이다.
이인혁박사
시인. 칼럼니스트
한국문단문인협회 대표
월간 한국시 詩부분 신인문학상, 월간 문학세계 문학상
(재) 평화의 길 국제재단 법인대표/이사장
한국신문방송총연합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