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사회적 동물에 비유한 것은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 기초한 집단적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집단생활 혹은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불가피한 것 가운데 하나가 자신이 소속된 집단이나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리더십과 이에 따라가는 추종자(follower)가 구분되며, 이 둘의 관계 여하에 따라 집단이나 공동체의 흥망성쇄가 좌우된다는 것이다.
한니발이 카르타고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 산을 넘는 기적을 낳았을 때 로마군은 한니발 장군의 리더십에 패배한 것이지 카르타고 군대의 전투력에 무너진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했을 때 그것은 시저의 리더십이지 그를 추종하는 군인들의 뜻은 아니었다.
오늘날 미국의 대통령제가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두번의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주변으로부터 3선의 요망을 단호하게 거절하였던 조지 워싱톤의 리더십 때문이었다. 미국의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인권의 존엄성을 세계적으로 제도화시킨 것도 결국은 링컨 대통령의 긴 안목과 리더십의 덕택이었다.
리더십은 왜 존재하는가. 일반적으로 리더십의 존재이유를 설명하는 데는 세가지 흐름이 있다. 하나는 개인적 차원이며, 다른 하나는 집합적 차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황론의 차원이다.
먼저 리더십의 존재이유에 대한 '개인적 차원'의 설명을 살펴보자. 개인적 차원의 설명은 주로 개인의 심리 또는 자질 등의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한다. 가장 대표적인 이론가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 Freud)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은 오랜 회임기간을 거친 후에 출생하게 된다.
▲ 프로이트(1856-1939. 사진_Biography.com) ©편집인 |
출생한 이후에도 인간은 다른 포유동물에 비해 가장 긴 기간 동안 부모라는 외부적 힘에 완전하게 의존하면서 생활을 해야만 한다. 이와같은 경험이 인간으로 하여금 복종과 의존의 대상이 되는 리더십을 요구하는 심리적 메카니즘을 낳게 하는 기본요인이라는 것이다. 이에따라 프로이트는 리더십에의 갈망은 인간의 의식구조에 고착되어 있는 현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S. Freud, 『Moses and Monotheism』(1939).
에릭 프롬(Erich Fromm)은 프로이트의 심리적 접근을 20세기 산업사회에서 출현한 파시즘(Fascism)과 공산주의 체제에서 나타나는 전체주의적 리더십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하여 응용하였다. 에릭 프롬에 의하면, 전통사회가 붕괴되고 산업화가 어느 정도 진전된 근대사회에서 대중은 대체로 고립된 원자적 존재로서 기능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대중은 더욱 심한 소외감과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대중은 외부에 존재하는 거대한 권위나 인격에게 자기를 철저하게 구속시켜 그것과의 동일화 identification를 통해 불안을 극복하려 하는데 이것이 근대화된 사회에서 전체주의적 리더십의 형성이 가능하게 되는 심리적 배경이 된다고 보았다. Erich Fromm,『Escape from Freedom』(1965).
▲ 에릭 프롬(1900-1980. 사진_Terebes) ©편집인 |
신화연구로 유명한 조셉 켐펠(Joseph Campbell)은 프로이트와는 상이한 관점에서 리더십의 존재를 설명한다. 켐펠에 의하면, 모든 인간에게는 예외없이 일상적인 삶의 조건을 탈피하여 일상화된 자기를 초극하고자 하는 강한 심리적 욕구가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상성을 탈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불가피하게 일상성과 평균성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리더를 설정하게 되고, 그와의 동일화를 통해 평균인적 존재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Joseph Campbell,『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1949).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 관계하며 성장한다. 공동체는 다양한 관계에 기초하여 움직여진다. 리더십의 불가피성이 여기에 있다. 인간이 형성하는 관계는 프로이트가 지적하듯이 인간으로 하여금 '복종과 의존'의 심리적 메카니즘을 내면에서부터 요구하도록 만든다. 리더십의 존재 이유에 대한 심리적 접근은 인간이 왜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가를 설명하는데 유용한 도구가 된다.
리더십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집합적 차원에서의 설명은 기능적 혹은 조직론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집합적 접근을 대표하는 이론 중의 하나가 생물행태론적(Bio-behavioral)접근이다. 이 이론은 인간은 기본적으로 생물학적 존재의 일부라는 전제 위에서 인간사회의 동태를 다른 동물사회에서 발견되는 특성에서 유추하여 설명한다.
▲ 조셉 캠벨(1904-1987. 사진_Joseph Cambell Foundation) ©편집인 |
이러한 접근을 시도하는 학자들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그들 집단을 방어하고 또한 대내적으로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원숭이, 침팬지 등 포유동물의 세계에도 리더를 중심으로 하는 계층적 혹은 위계적 질서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에 근거하여 기본적으로 인간도 다른 포유동물과 같은 유사한 조건을 공유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리더를 설정하고 추종하도록 짜인 존재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핵전쟁 위협으로 북한이 외부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북한사회를 전시체제로 변경하여 내부의 질서를 더욱 공고화하여 체제를 안정시키고자 했던 북한 통치엘리트의 리더십과 북한주민의 관계가 이를 잘 설명한다.
심리적 접근법으로 리더십의 존재이유를 설명했던 프로이트 역시 집단적 차원에서도 설명을 시도한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어떤 집단이든지 그 집단의 정체성을 보호,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정집단의 정체성을 구현시키는 인물을 설정하고 그를 추종하게 된다. 이것은 인간사회에서 집단과 리더십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음을 말해준다.
정당의 파벌, 마피아 조직, 그리고 신흥종교집단은 보스 혹은 교주가 사망하면, 새로운 보스나 후계자를 세워 그에게 충성을 서약함으로써 파벌, 조직 그리고 집단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집단적 차원에서의 리더십의 존재이유를 설명해주는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S. Freud, 『Group Psychology and the Analysis of the Ego』 (1954).
▲ 로버트 미헬스(1876-1936. 사진_Wikipedia) ©편집인 |
고전이론이지만 엘리트 학파의 중심 인물인 로버트 미헬스(Robert Michels)는 ‘과두제의 철칙’(Iron law of oligarchy)이라는 개념으로 집단에 있어서 리더십의 존재이유를 설명한다. 독일의 사민당을 사례로 연구한 미헬스에 의하면, 현대사회에서 거대한 조직을 운영해 가는데 있어서 조직의 의사결정과정에 대중이 직접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동시에 조직의 효율적 운영과 관리를 위하여 전문적 지식과 정보를 유지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조직에는 ‘과두제의 철칙'이 작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부 이론가들은 정치구조나 회사의 구조가 어떤 형태이든간에, 모든 정부와 회사는 과두제의 형태를 유지 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관료조직, 관료제로 운영되는 정당형태, 그리고 간부 중심의 회사경영조직이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미헬스는, “선출된 자가 선출한 자들을 지배하고, 위임받은 자가 위임한 자들을 지배하며, 대의원이 유권자들을 지배한다. 다양한 형태의 민주주의의 틀내에서 과두제가 발전하는 것은, 그것이 사회주의 조직이든 아나키즘 조직이든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유기적 경향이다.” 라고 말하면서 과두제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Robert Michels, 『Political Parties』(1962).
마지막으로 리더십의 존재 이유를 상황적인 것으로부터 파악하는 상황론은 리더십의 효율성이 지도자 집단의 성격, 직무의 특징, 시간, 장소, 환경 등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입장을 취하여 개인적 요인보다는 사회적 요인을 중요시 한다.
상황이론은 잠재적 지도자가 리더십의 역할을 의식적으로 추구하지 않으면 일정한 상황하에서 리더십이 요구되는 경우 도전과 반응의 연쇄과정 속에서 특정개인으로부터 리더십이 나오게 된다고 본다. 상황이론은 사회학자와 사회심리학자들에 의해 폭넓게 수용되고 있는데, 리더십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다른 구성원과 교환되는 기능적이며 역학적인 관계에 존재하며, 그것은 항상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지도자가 그 조직 속에서 움직이게 되면 조직이나 집단 뿐만 아니라 조직과 집단이 직면하고 있는 (환경적)상황도 검토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측면에서, “위기상황에서 등장한 지도자”란 말이 상황이론이 설명한 리더십의 존재이유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으로 부터 자유와 해방을 찾아 떠난 사건에서의 모세, 블레셋과의 전쟁 상황에서 등장한 다윗 등과 같은 성경의 위인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에서 위기의 미국을 구출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고질적인 영국병을 고친 마가렛 대처, 만성적자의 늪에 빠졌던 GE를 회생시킨 잭 웰치 등과 같은 지도자들이 상황이론에서 리더십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매우 복잡하고 다원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조직이나 집단, 혹은 국가에서의 의사결정과정은 매우 복잡한 절차를 겪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정보들과 이해관계가 얽혀져 있어 그 실타래를 푸는 것조차도 매우 어렵고 복잡하다. 세계정치도 다차원적, 다문화적 관계에 기초하여 작동하고 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인간은 관계적 삶을 살기 때문에 리더십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우리는 리더십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리더십을 요구해야 한다.@
글쓴이. 정영호(씨폴리티카 발행인 &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