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Kairos)로 살아가기
해가 바뀌었지만 우리네 삶은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시작한다. 우리의 삶은 일상의 반복이다. 이렇듯 일상생활은 언뜻 보면 매우 단조롭고 반복되는 삶이고 큰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가까이서 매일 접촉하는 것은 신비롭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다. 그러나 하루라는 일상이 모여 일생이 되고 오늘이라는 반복적인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되기 마련이다.
나무가 모여 숲이 되듯이, ‘일상(日常)’이 모여 ‘일생(一生)’이 된다. 인생은 큰 사건 몇 가지와 수없이 많은 일상으로 이루어진다. 큰 사건도 중요하지만, 작은 일상은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일본의 대표적인 기독교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1861~1930)는 말한다. “하루는 일생이다. 선한 일생이 있는 것 같이 선한 하루가 있다. 악한 일생이 있는 것같이 악한 하루가 있다.” 그러므로 반복되는 일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실 우리의 하루 생활은 너무나 친숙한 것이어서 그다지 신비로 울 것도 없고 범상하고 진부해서 사소하고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이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언제 행복을 느낄 수 있겠는가?
눈부신 인생을 살아가려면 하루가 아름다워야 한다.
구약성서 전도서에는 범사에 기한이 있다고 한다. 모든 일은 시작과 끝이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결혼할 때가 있고, 결혼이 끝날 때가 있다. 모든 일에는 정해진 기한이 있다. 성서는 Time을 말한다. ‘크로노스’(Kronos)의 삶과 ‘카이로스’(Kairos)의 삶이다. 크로노스는 일반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1분 1초, 하루 한 달처럼 시계나 달력으로 계산되는 수평적이고 직선적인 의미의 시간이다.
반면 카이로스는 일반적으로 때나 기회를 뜻한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가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갑작스럽게 일어나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즉 그 순간(The moment) 그 사건(The event), 순간으로 포착되는 그 날의 시간을 카이로스(Kairos)라고 한다. 여기서 때는 카이로스를 이야기한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시간의 흐름에서 살도록 하셨다. 하나님의 영역은 다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신다. 그러므로 매 순간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바른 삶을 살면서 너의 삶을 즐겨라. 이게 카이로스(Kairos)의 시간 즉 때에 대한 전도서의 결론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사람들은 각각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똑같은 24시간을 살더라도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의 한 시간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이의 한 시간의 느낌은 차이가 있다. 즉 국가와 사회의 발전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운명과 성패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시간에 얽매이고 휘둘리며 정신없는 삶을 살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시간의 주인이 돼 능동적인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작심삼일(作心三日)도 하지 못하고 하루를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무미건조한 목표보다는 비전을 설정하고, 설정한 비전을 한 해를 살아가는 사명이자 원동력으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들의 소소한 행복과 평화로움이 중요하다.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처럼, 시간과 감정을 지탱해 주는 것이 있어야 한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원하는 건 지금 삶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목적이 있는 삶, 비전이 이끄는 삶은 활력과 재기가 넘치는 하루를 살아야겠다. 자신이 정한 비전을 주변 사람과 공유하는 것도 좋다. 의욕적이고 힘찬 하루를 시작하자.
하루를 이끄는 목표를 정하고, 알뜰하게 실천해나가는 재미를 누려보자.
[이인혁시인]
시인. 칼럼니스트
한국신문방송총연합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