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혁시인 칼럼] 초심(初心)과 뒷심

[이인혁시인 칼럼] 초심(初心)과 뒷심

이현 2022-10-06 (목) 12:42 2년전  



초심(初心)과 뒷심

 

초심이란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처음 가지는 마음이다. 처음에 다짐하는 마음이요 겸손과 순수한 마음이다. 중요한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초심(初心)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초심을 잃지 않을 때 뒷심도 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인생에 있어 지혜로운 삶은 영원한 초심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처음처럼이다.

 

돌이켜보면, 누구에게나 첫 마음으로 알찬 각오와 굳은 의지로 시작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역시 변치 않는 초심(初心)을 유지하는 일일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인류의 고통은 언제나 이 같은 초심(初心)을 잃어버리는 데서 시작됐다.

처음부터 요령 부리는 사람, 목에 힘들어 사는 사람, 교만과 탐욕으로 가득 친 사람은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주변의 유혹과 인습, 관심과 질타가 문제다. 그렇다고 세상이 그들을 바꿔 놓았다는 변()만으로 세상을 향해 돌 던지기에는 자신이 너무 못나 보이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초심을 상실했다는 것은 교만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이요, 마음의 열정이 식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마음을 관찰해야 한다. 초심과 얼마나 거리가 떨어져 있는지, 초심을 상실하지는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초심은 사랑과 같아서 날마다 가꾸지 않으면 안 된다.

 

처음의 마음가짐과 계획과 행동들이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지워지고 변하고 주변 환경과 형편에 따라 개인의 이익을 추구한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정치가 안영(晏嬰)강남종귤 강북위지(江南種橘 江北爲枳)” “강남에 귤나무를 강북에 옮겨 심으니 탱자가 열린다.”라는 말을 하였다. 그가 말한 배경에는 제나라에서 살 때는 심성이 착하고 선량하였으나 초나라에 끌려와 거친 풍토와 사나운 인심에 쌓여 살다 보니 도둑으로 변질이 되었다는 말이다.

생물학적으로 귤나무에서 탱자가 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안영은 모든 생물이 그 환경에 따라 변하는 습성에 대하여 이를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초지일관(初志一貫) - 처음에 세운 뜻을 이루려고 한결같이 밀고 나가야 한다.

또한 초심불망(初心不忘) - 처음에 가졌던 마음을 새롭게 다잡고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초심(初心)과 함께 열심을 내어 실천할 것은 뒷심이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남보다 덜 자고 덜 먹으면서 이를 악물고 노력하며 좀 쉬고 남들처럼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지워야 한다. 진정으로 초심과 뒷심은 언제나 영원히 함께해야 할 동반자(同伴者)이다.

 

옛날 이백(李白)이라는 사람이 훌륭한 스승을 찾아 산에 들어가 공부를 하던 중 싫증이 나자

스승에게 말도 없이 산에서 내려왔다. 집을 향해 걷고 있던 이백이 냇가에 이르자 한 노파가 바위에 열심히 도끼를 갈고 있었다. 이백은 노파에게 무엇을 하고 계시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파는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것이 가능한 일이냐고 이백이 되묻자, "중단하지 않으면 가능하지"라고 했다. 마부위침(磨斧爲針)이란 고사(古史)이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꾸준히 뒷심을 가지고 본연의 자세에 충실하여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한국인들 모두가 공정하게 인간적으로 살아갈 길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개인주의나 집단이기주의 지역주의, 파벌주의 등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떤 곤경과 맞닥뜨리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초심을 되짚어 보는 일을 하나님의 계시쯤으로 생각하자. 독일의 유명 건축예술가 미스(Mies van der rohe)()은 작은 데 있다(God is in the detail).”라고 했다.

가장 중요한 기본자세는 초심을 바로 잡는 것이다. 씨앗에서 열매가 나오듯이 마음가짐에서 행동이 나온다. 가치관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에 따라 관계와 성과가 달라진다.

 

[이인혁시인]

 

시인. 칼럼니스트

헤드라인 코리아저널 편집위원

한국신문방송총연합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