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지나가는 소리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걸까. 꽃이 펴서 봄이 온 걸까. 꽃은 피었고 봄은 왔는데 봄이 지나는 길목에서 곁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좋기만 하다. 화창한 봄 날인데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화창한 봄 날을 느껴 본다.
봄빛
봄물
봄비
봄비에 촉촉이 젖듯이 봄빛에 화사하게 물들 듯이 그렇게 봄 안에 있기만 해도 봄은 내게로 와 내 것이 된다.
봄날이 되니 봄이 한창이다. 동네 어귀의 길가에도 꽃을 피워내고 있다.
꽃 향기 가득한 밭에는 아카시아가 흐드러지게 피고 꽃들이 화사한 모습을 자랑하듯 온통 색들로 아름답다, 봄은 그렇게 온 동네와 산 허리를 가로질러 가고 있다.
봄이 지나가는 길에는 많은 사연을 담은 발자국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봄꽃의 사연에 나이가 한 살씩 더 들어가며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도로 위를 열을 맞춰 흐르던 빗줄기처럼, 잘 붙어있던 어린 잎새마저 강한 바람에 빗줄기 속으로 곤두박질치고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인간의 마음이 이럴 땐 참 무정하게 느껴진다.
꽃잎이 비를 맞고 바람에 떠밀려 우수수 떨어질 때면 내겐 봄꽃의 의미가 슬픔이 되기도 하고 눈물이 되기도 한다. 가는 봄이 아쉬워 그러는지 사랑과 이별에 지는 봄이 아쉽기만 하다.
요즘 봄이 지나는 소리를 들으며 세월이 빠르게 지나는 것을 실감한다. 그런데 이 봄의 계절에 소리가 많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역시 빗소리겠다. 봄이 지나가는 소리, 들판으로 난 길, 저수지와 돌돌 흐르는 시냇물, 경운기 소리, 새와 염소의 울음소리, 막 뜯어온 산나물을 삶느라 아궁이에 불을 때는 소리, 소를 몰고 돌아오는 저녁 등이 눈에 보이고 또 들린다. 나른하고 평화로웠던 봄의 시간이 보인다.
김용택시인의 <봄날>을 조용히 읊어 보자.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이 봄날에 온 세상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유심하게 들어보자. 생명의 소리를 말이다. 봄이 지나가는 길목에는 새순 돋는 소리 가득한데 온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이다.
봄의 기운이 뚜렷하니 봄날 계절의 세계의 움직임도 부쩍 활발해지는 느낌이다.
우리는 이런 봄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아름다운 이 봄날을 말이다.
[이인혁시인]
시인. 칼럼니스트
한국신문방송총연합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