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진보하고 복음은 후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은 인간에게 생활을 편리하게 하나 인간을 선하게 만들지 못하고 구원할 수도 없다. 가전제품이나 일상생활 물질이 모두 더 편리한 방향으로 더 좋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생활이 편리하고 더 좋아졌다고 해서 인간의 마음과 성품이 더 좋아 진 것은 아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말했던 것 같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다. 인간의 품성과 마음이 과학의 발달로 더 좋아진 것이 아니라 더 부패해졌다. 더 나아가 복음과 신앙생활까지도 과학의 이기가 들어와 많이 편리해졌다. 온라인으로 비대면 예배를 드림으로 교회에 예배드리러 오지 않아도 된다. 또한 모든 교회 행사도 단톡방을 이용하며 온라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성령에서 말하는 본질에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변질을 가져옴도 알아야 한다. 비대면 예배는 예배행위를 편리하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대면하여 예배하는 본질의 요구와는 역행하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계는 성령은 아니다. 그래서 인간의 본질을 변화시킬 수 없다. 오직 성령만이 인간의 본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 과학은 영성을 형성케 하거나 신의 성품을 따르게 할 수 없다. 최근에는 로봇이 인간 대리행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로봇 속에 성령이 역사할 수 없으며 로봇이 하나님의 성품을 가질 수도 없다. 우리는 편리 때문에 복음의 원리에서 변질 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변화를 가져오는 시대적 멘토와 지도자가 필요한 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요즘 우리는 마약 동성애 무신론과 이단 등 많은 유혹과 위험 속에서 살고 있다. 기독교인은 세상을 떠나 살 수는 없지만 세속화 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반대로 어두움의 주관들이 만들어 놓은 바벨론 같은 세상을 빛의 세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임하도록 해야 한다.
이사야는 이상적인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고 예언하였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으며 독사의 굴에 손가락을 넣어도 물지 않는 나라”(이사야 2장 4절)를 바라보았다. 약육강식의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도래해야 할 것이다.
조화와 생화가 있다. 모양은 조화가 생화보다 더 곱고 더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조화에는 나비와 벌들은 날아오지 않는다. 그 꽃에는 향기가 없고 꿀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와 기독교인은 과학의 편의에 물든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복음의 향기와 생명력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인찬 목사(국제독립교회연합회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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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는 목회자들이 교단 정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목회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한국교회 원로인 박조준 목사가 설립한 단체이다. 정인찬 총회장은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총장으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