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식스 포켓’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섯 개의 주머니’라는 말이지만 한 명의 어린이를 위해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까지 총 여섯명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낸다는 속뜻이 담겨 있더군요. 요즘처럼 아이 보기 힘든 시대에 손주에게 아낌없이 지출하는 풍조를 빗댄 말이라서 어린이를 마케팅 대상으로 삼는 기업들이 자주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
식스 포켓이란 말이 아이를 이익의 대상으로 삼는 기업의 살벌한 말이라면, 비슷하지만 경청하게 만드는 유익한 말도 있습니다. ‘아이 한 명을 기르기 위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 아프리카 속담으로 알려진 이 말은 ‘아이가 곧 우리의 미래이기에 모든 이가 함께 힘써 길러야 한다’라는 아름다운 뜻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사회든 어떤 공동체든 아이를 대하는 방식만큼 그곳의 정신 세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건 없습니다.
교회는 어떨까요. 아이들을 귀찮고 성가시며 도움 안 되는 존재로 여기던 제자들을 예수님이 막아선 사건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가 이 일을 똑같이 재현합니다. 예배와 설교에 방해되니 유아와 어린이는 어른들의 예배당에서 분리해 버리고 그게 거룩한 교회를 위한 당연한 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착각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쳤지요. 어린이야말로 귀하게 대접받아야 할 하나님 나라의 자녀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어린이와 관련된 예수님의 말씀은 선택사항이나 권고가 아니라 명령이라는 점도 교회는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라고 입을 모아 외칩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잘 양육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맞습니다. 잘 양육하고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게 잘 양육하고 잘 가르치는 것일까요.
집에서는 아이들을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고, 교회에선 빵빵한 어린이 전문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떠들썩하게 행사하면 끝날까요. 적어도 교회라면 그걸 신앙교육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신앙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형성됩니다.’ 신앙교육이란 말을 하면 사람들이 교회 교육 프로그램부터 떠올리겠지만 가정의 삶은 그와 비교할 수 없이 더 중요합니다. 부모가 제아무리 모태신앙이고 목사 장로라 해도 신앙이 형성될 수 있는 장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그 양육은 실패하고 맙니다. 더 쉬운 말로 일상에서 어른들이 신앙의 본을 보여주지 못하면 교육은 실패할 것이고, 그 반대라면 아이는 좋은 신앙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본을 보이는 것, 이것이 모든 교육의 기본입니다.
교회에서도 똑같습니다. 신앙은 가르치고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기에 무언가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번득이고 화려한 행사를 한다고 해서 그게 신앙교육이 될 수 없습니다.
아이가 좀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가족이잖아요. 예배 시간에 아빠 엄마 품에서 함께 찬송하고 성경 함께 읽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그 소리를 듣고 성찬 시간에 경건하게 임하는 교우들 뒤를 졸졸 따라가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관심 어린 눈빛과 다정한 인사말을 통해 아이의 신앙은 선하고 아름답게 자랍니다.
이것은 물고기 비늘에 물이 스미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소소한 일상 가운데 엄마 아빠 그리고 교회 성도들 속에서 신앙이 만들어져 갑니다. 앞서 ‘아이 한명을 키우기 위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말씀드렸는데, 우리가 그렇게 다 연결돼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참으로 우리의 미래가 됩니다. 교회부터라도 아이들을 분리하지 말고 진심으로 품어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