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웅 언론학박사
허구한 날 고함과 삿대질이 난무하는 국회에서 모처럼 찬사의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14일 오후 3시 반경에 대정부 질문이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는 고성도 없고 야유도 사라졌다. 국회 대정부질문 마지막 날 안내견과 함께 단상에 오른 시각장애인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의 연설은 여·야를 막론하고 큰 박수를 받았다. 그의 온화한 표정, 부드러운 음성, 예의를 갖춘 진지한 질의 태도는 품격이 높았고 울림도 컸다. 지금까지 횡행하던 대정부질문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김예지 의원은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으로서 모범적 품위를 보여줬기에 국회 내부는 물론 국민들로부터 감동의 찬사가 쏟아진 것이다. 김 의원의 질문은 국회의 대정부 질문 제도가 지닌 본연의 취지와 목적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밑바닥 현실을 잘 전달하면서 행정부와 함께 법·제도적 대안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진솔하게 잘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의원이 한동훈 장관에게 발언대로 나와달라고 하자 한 장관은 발언대로 올라와 김 의원이 알 수 있도록 “김 의원님 한동훈 법무부 장관 나와 있습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김 의원도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며 질의를 이어갔다. 김 의원은 검수완박으로 인해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이 폐지되면서 장애인 학대 피해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한 장관에게 질의했다.
김 의원이 이날 정치적으로 민감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문제를 장애인의 시각으로 지적한 것이다. 그는 검수완박으로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이 폐지된 점을 지적했다. 장애인 학대 범죄 사실 자체가 묻힐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한 장관은 “(장애인 학대 피해자를 돕는 법이) 여러 곳에 산재돼 있고 하나로 모아져 있지는 않다”며 “의원님이 발의한 40페이지 가까운 장애인 학대 특례법 제정안을 상세히 살펴봤는데, 이렇게 (산재된 법을) 모으는 시도가 상당히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김 의원의 발언에 어떤 야당 의원도 고성을 지르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한 장관에 이어 한덕수 국무총리를 호출하자, 한 총리 역시 큰 소리로 “네, 국무총리 발언대에 나와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김 의원이 한 총리에게 “우리 정부의 첫 예산을 보면 장애인 예산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큼 나름의 성과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장애계와 언론 등에서 아주 인색한 평가를 받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한 총리는 “작년에 4조800억원 정도의 장애인 예산이 있었지만 올해에는 4조5400억원으로 11% 정도 늘었다. 그럼에도 부족하게 느껴진다면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날 대정부 질문에선 “후쿠시마 오염수를 총리와 직계가족도 같이 마시겠는가”식의 천박한 흑색 질문이 난무했다. 그동안 행해졌던 국회의 대정부 질문 행태는 의원들의 오만불손한 고자세와 질타를 통해 지지층의 환심을 사는 수단으로 변질된 상태를 보여왔다. 고함이나 삿대질 자극적인 언행으로 일관해야만 대정부 질문을 제대로 잘하는 것인냥 착각한 행태를 보여왔다. 마침 같은 날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살벌한 질타로 따지는 대정부 질문과 김예지 의원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비쳤다.
김예지 의원의 대정부 질문에 야당도 찬사를 보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김 의원의 대정부 질문이 큰 울림을 줬다며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아픈 지적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입법과 예산, 정책으로 응답하겠다”고 했다. 당 대표와 여·야 정치인 간의 막말과 설전이 오가고, 상대방에 대한 소송을 불사하는 험악한 상황에서 야당 원내대표가 여당 의원을 추켜세운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김 의원은 대정부질문 마무리 발언으로 물고기 ‘코이'를 통한 ’코이 법칙‘을 소개해 더욱 감동을 자아냈다. 그는 “코이는 작은 어항 속에서는 10㎝를 넘지 않지만 수족관에서는 30㎝까지 그리고 강물에서는 1m가 넘게 자라나는 그런 고기”라면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기회와 가능성, 성장을 가로막는 어항과 수족관을 깨고 국민이 기회의 균등 속에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강물이 돼주시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소외된 분들을 대변하는 공복으로서 모든 국민이 당당한 주권자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의 마지막 발언은 울림이 컸다. 그동안 속출하던 막말과 우격다짐으로 국민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던 국회의사당에서 이례적으로 여·야 의원들이 함께 긍정의 미소와 기립 박수의 진풍경을 이끌어낸 장면이었다.
김 의원의 예절을 갖춘 질문과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는 국회의 품격을 쇄신하는 순간이었다. 바로 이 순간이 국회가 새롭게 거듭나 탈바꿈하는 전기로 이어지기를 국민은 기대한다. 국회의원의 품격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이제 총선을 앞두고 있다. 오만하고 자질없는 의원들을 국민이 걸러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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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웅 약력]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경남대 석좌교수
YTN 매체비평 출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예오락방송 특별 위원장
방송위원회(보도교양/연예오락)심의 위원장
언론중재위원회 위원
KBS 예능국장·TV제작국장·총국장·정책실장·편성실장
중앙일보·동양방송(TBC) TV제작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