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시인을 생각한다.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시인의 귀천은 생명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삶에 대한 달관과 죽음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드러낸 작품이다. 이 시에서는 각 연의 첫 행을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로 시작하고 있다. 하늘로 돌아간다는 것, 즉 ‘귀천(歸天)’은 죽음을 의미한다. 화자는 자신이 하늘에서 왔으니 생명이 다하면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1연에서는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이슬’의 소멸적인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2연 역시 죽음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를 ‘노을빛’의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때 ‘이슬’과 ‘노을빛’은 소멸의 이미지와 동시에 깨끗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지닌다.
이처럼 시인이 ‘이슬’, ‘노을빛’과 함께 하늘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유한한 생명이 다하면 무한한 우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하는 시인의 인식을 보여 준다.
3연에서는 인간의 삶 자체를 ‘소풍’에 비유하고 있다. 인생을 하늘에서 지상으로 잠깐 다니러 온 ‘소풍’에 비유하는 이러한 태도에는 세상에의 욕망과 집착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삶을 즐기는 태도가 드러난다. 결국 ‘소풍’에는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죽음을 달관하는 화자의 태도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에는 한 많고 고달팠던 인생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아름답게 인식하는, 삶에 대한 시인의 긍정과 관조의 태도가 잘 드러난다.
그러나 이 시 속에는 시인의 우수가 짙게 배어 있다. 그리고 그 어떤 절제의 모습이 그 밑그림을 하고 있다. 죽음을 수용하는 것 같은, 그러면서도 죽음의 고통이나 공포를 초월하는 수용의 자세, 그리고 ‘새벽빛’이나 ‘이슬’(草露人生)처럼 순간적인 인생이라는 허무 같은 것이 이 시의 그림을 이루는 색채라 할 것이다.
1954년 서울대 상과대학을 수료하였으나 1967년 동백림 사건(간첩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 약 6개월 간 옥고를 치르고 무혐의로 풀려난 적이 있다. 1971년 고문의 후유증과 음주생활에서 오는 영양실조로 거리에서 쓰러져 행려병자로 서울 시립 정신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였다.
인사동 큰길에서 어느 골목 어귀로 들어서면 ‘귀천’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는 작은 찻집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귀천」은 천상병(千祥炳, 1930~1993)의 널리 알려진 시편이고, 찻집 ‘귀천’의 주인은 그의 아내 고 목순옥씨 이었다. 그 찻집 벽면에는 파안대소하는 천상병 시인의 커다란 얼굴 사진이 붙어 있다.
천상병시인은 도가적인 자연의 삶, 가난한 일상 속에서 접하는 자연에 관심을 보이며 높은 경지의 소박성을 추구하는 시 세계로 돌아간다. “비시적인 것과 시적인 것, 일상적 관찰과 철학적 의미, 초연한 관조와 정치적 관심, 소박한 표면과 깊은 내면을 결합하는 독특하고 뛰어난 시”들을 빚어낸 천상병은 후기로 접어들며 이전보다 한결 단순하고 소박하며 고졸한 세계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의 시는 순수한 것의 원형인 어린아이의 심성을 지향하고, 순진성의 시학을 구현한다. 어린 것, 순진한 것, 약하고 착한 것을 내포한 동심에 대한 사랑과 선(善) 지향은 천상병 시 세계의 움직일 수 없는 특징이다.
천상병시인은 실제로 많은 죽음을 경험하였다. 누구나가 한번쯤은 두려워하는 죽음에 대해 호탕하고 유쾌하게 표현한 사람이었고, 죽음을 아름다운 이별로 생각한 순수 시인이었다. 죽음을 그저 자신의 고향으로 떠나는 과정일 뿐이라고 여기며 그가 잠시 살았던 이 세상에서의 삶을 아름다운 소풍으로 여기었다. 그렇기에 죽음은 결코 비극적인 세계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삶은 잠시 소풍 나온 삶이 아닌 가
부끄럽지 않게 아름다운 삶을 살고 세상이 참 아름다웠다고 말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본다.
지금 천상병시인, 그는 하늘나라 어떠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 변함없이 찬란하고 황홀했던 소풍의 시간들을 떵떵거리며 얘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루의 막걸리와 담배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서슴없이 외쳤던 시인. 가난과 무직, 방탕, 주벽 등으로 수많은 일화를 남기며 문단의 기인으로 불린 시인은 우주의 근원,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한 언어로 압축해 시를 썼다.
죽는 날까지 아이 같은 순수함과 맑은 영혼을 간직했던 천상(天上)의 시인, 계곡의 물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한 수 한 수 시(詩) 감상을 하노라면 시인 특유의 순수한 감성과의 교감이 느껴진다.
시인은 가난해도 행복했다. 일생은 가난과 고통으로 물들었으나 시어(詩語)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그저 / 웃음이래야 하는데 / 나에겐 내일도 없고/ 걱정도 없습니다. / 예수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 '나는 행복합니다.' 중에서 -
“나는 볼품없이 가난하지만 / 인간의 삶에는 부족하지 않다…하늘에 감사할 뿐이다”
- '나의 가난함' 중에서 -
오늘처럼 참으로 살기 고달픈 세상에서 천상병 시인을 만나고 그의 시를 감상하는 일은 그야말로 감격스러운 일이다.
이인혁시인
시인. 칼럼니스트
한국문단문인협회 대표
(재) 평화의 길 국제재단 법인대표/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