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 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요즘 시사적인 문제를 다루는 글을 쓰는 분들은 대부분 팬데믹으로 번진 코로나19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 제일성으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을 때부터 불안하긴 했다. 우리는 온고지신으로 살아온 민족이다. 과거에 비춰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오는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쌓아온 경험은 미래를 위한 소중한 양식이요 자원이 된다. 이것을 무시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지 몹시 궁금했다.
그런데 나오는 정책마다 보편타당성이 있는 게 아니라 구닥다리 이론을 억지로 끌어다가 잘하던 것을 뭉개버리는 못난 짓거리를 자행하고 있지 않은가. 환경을 생각하여 원자력 발전을 없애겠다는 것이 이른바 ‘탈원전’이다.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막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지구온난화를 막아야 한다는 명제는 언제나 우리를 압박하는 요인이다. 여기에 가장 적합한 연료가 원전이다.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가장 적게 하는 연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원자력발전에서 나오는 폐기물의 처리다.
고준위 폐기물과 저준위폐기물로 양분되는데 이들 폐기물이 오랜 세월 방사능에 노출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어 처리에 애로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효과적으로 폐기물을 기밀용기에 담아 100년 후에 개봉해도 해롭지 않을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를 과대 포장한 영화 한편을 보고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으나 신재생에너지 역시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은 엄청나게 크다.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은 발전 자체로는 가장 청정한 에너지일 수 있겠으나 시설공사를 하고 관리하는데 엄청난 환경파괴를 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져 있다.
탈원전의 명분으로 삼은 환경보호는 참으로 갸륵한 마음이지만 발전 비용과 환경파괴의 상관관계를 따져볼 때 국민에게 주는 혜택은 원전이 훨씬 앞서고 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원전을 없애기 위해서 산업자원부가 총동원되어 원전의 경제성을 문제 삼은 것은 그들의 억지 조작이었음이 이미 드러났다. 청와대의 명을 받은 장관의 호통으로 산자부 국장과 과장들이 줄줄이 데이터를 삭제했다고 해서 2명은 교도소에서 재판만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본인의 뜻이 아니면서 삭제를 한 이유에 대해서 “신내림을 받은 것 같다”고 답변하여 시중의 화두로 등장한 것도 불행한 일이다.
요즘 새로 나온 화제는 단연 LH다. 집이 없는 사람을 위해서 주택을 공급하는 공기업이다. 14,000 명의 직원을 거느린 거대기업이다. 여기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하여 무더기로 땅을 산 것이 들통 났다. 개발될 지역을 미리 알고 그 주위에 있는 땅을 사두면 봉이 김선달이 아니어도 누워서 떡 먹기로 떼돈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개발이 되면 길이 없는 맹지(盲地)도 한꺼번에 보상이 되기 때문에 더 큰 이문을 남기게 된다. 주택을 지으려면 토지가 필수불가결이니 이 길속을 제일 잘 아는 LH직원들이 사전에 똥값으로 투기한 것이다.
자기 혼자서만 한 게 아니라 일가친척과 지인들에게 슬쩍 정보를 줘 수많은 사람들이 땅 투기를 했다고 하니 비싼 보상을 주고 집을 지으면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수밖에 없다. 정부가 25번인지 몇 번인지 해를 넘겨가며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어도 집값은 혀를 내밀며 당국을 조롱했다. “너희들이 올려놓은 비싼 땅에 지은 집이 비쌀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런데 시장(市場)더러 값을 내리라고 아무리 다그쳐도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무슨 수로 집값을 내릴 수 있겠느냐? 신내림을 받았다면 또 몰라도--” 이것이 현실이다.
이 통에 죽어나는 건 집 없는 서민들이다. 겨우 직장을 얻어 고린자비로 아껴 쓰며 예금과 적금만 붓던 젊은 청춘들은 아버지 찬스나 어머니 찬스도 없으니 고스란히 제 수입만으로 집장만을 해야 되는데 이들 부정을 저지르는 사전 정보 입수자들 때문에 월세조차 얻기 힘든 물로 씻은 바가지 신세로 전락했다. 2030으로 지칭되는 젊은이들이 학교 다닐 때에는 수포자가 되더니 이제는 집포자가 되어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신세가 되었다.
이들에게 쏟아진 사회적 비리와 부정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자신도 모르게 몸은 쇠약해지고 면역력은 저하되어 언제 중병에 걸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실제로 코로나19가 유행하고 있는 지금 면역력이 가장 약한 노인 인구의 사망자가 가장 많지만 대부분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들이어서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확진자의 숫자는 의외로 청장년이 많다고 알려졌다. 힘이 남아도는 젊은이들이 코로나 감염이 많다는 것은 사회적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없다는 허탈감에서 면역력이 떨어진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사람이 병에 걸리면 의사의 처방에 따른 투약이 기본이다. 그러나 약만으로 치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옛날부터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고 했다. 음식과 약을 똑같은 반열에 올리고 있다. 음식은 우리 몸을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기 때문에 약보다 한 수 앞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식 중에는 약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많은 식품학자들의 연구가 치열하다. 또 침이나 뜸으로 온갖 통증과 병증세를 완화시키고 궁극적으로 치료목적을 달성하는 연구자들도 허다하다.
지난해에 10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김남수선생은 평생 뜸과 침으로 모든 병을 치료하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은 분이다. 그에게는 3000명의 제자가 있는데 장관이나 국회의원 장성 등 내로라하는 사회적 거물급 인사들이 자청하여 제자가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는 명성을 바탕으로 축재할 기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봉사를 제일 덕목으로 삼아 제자들로 하여금 국회의사당과 감사원 한국방송공사 등에도 무료 치료소를 만들게 하여 운영하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내 친구 중에도 그의 제자가 있다.
이처럼 의술은 인술(仁術)이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돈을 받고 치료하지만 최소한도의 수입만 챙기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소록도에서 평생을 봉사한 외국의 수녀님들도 있고, 아프리카 오지에서 인술을 베푼 한국의 의사도 있다. 몇 년 전 몽골에 가니까 이태준이라는 한국인이 몽골의 의성(醫聖)으로 존경받고 있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는 한국 최초의 의사가 되어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중국을 거쳐 몽골에 자리 잡았다. 모든 것이 열악한 몽골의 의료계는 그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으며 이태준 역시 몽골에서의 봉사를 하늘이 준 기회로 알고 죽을 때까지 봉사했다. 수도 울란바트로 한가운데에는 이태준을 기리는 넓은 공원이 있다.
이런 기억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병에 걸린 사람을 치유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약과 수술만이 아니라 사회적 치료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자기를 버리고 봉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야 감동으로 승화하여 치료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며칠 전 신문에 어느 한 동네에 사는 네 가구의 주인들이 한국의 과학발전에 기여하도록 카이스트대학에 761억원을 기부했다는 기사가 크게 났다. 사업으로 큰돈을 번 분들이 용케 한 동네에 살게 되면서 남은 인생을 기부와 봉사로 장식하려고 마음먹었다는 것 자체가 감동을 줬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기부정신을 감염시켰으니 이런 정신이 팬데믹으로 번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사회적 치료방법의 백미다. 우리나라를 좀먹고 있는 것은 가장 효율적이고 역동적이어야 할 정치 분야가 갈등과 분열로 치닫고 있는 현상이다. 부정과 부패를 거론하는 것조차 부끄러울 만큼 뻔뻔하고 염치예의를 돌보지 않는 권력자들의 행태는 가뜩이나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서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동력이 되어 병든 사회를 더욱 더 아프게 한다. 거짓을 참말처럼 거침없이 내뱉는 지도자들의 낯 두꺼운 행패가 사라져야 사람의 병도 치유되는 것이며 이것이 사회적 치료방법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권력자가 스스로 고치지 않으면 시민들은 투표권으로 징치해야 하는 게 4.19혁명이나 5.18항쟁이 가르쳐주는 역사의 교훈이다.
[주요 프로필] 전북대졸업. 민추협 사무총장. 대구신문 대기자. 419혁명공로자. 518민주화운동 부상자. 전북대 초빙교수. 건국포장수상 국가유공자
문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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