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가을, 창조주의 경이로운 섭리를 느끼며

[하민국 칼럼] 가을, 창조주의 경이로운 섭리를 느끼며

오인숙 2021-11-13 (토) 18:53 3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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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두레마을 


가을. 

붉은 것의 붉음이 이리도 다양하고, 노랗고 푸른 그 색채가 이렇게 조화로울 수 있을까. 가을의 조화 앞에서 창조주의 경이로운 창조 섭리를 어찌 부정할 수 있을까. 삼천리 방방곡곡 가을이 누워 있다.

낙엽 길을 걷는다. 바람 한 결에 우수수 쏟아내리는 낙엽 길 따라 긴 여울이 병풍 바위를 휘감고 섰다. 햇살 그림자 꼬리를 문 개여울의 상채기가 느긋하다.

이른 귀가 길에 오른 높새구름을 등에 업고 먼 길 날아온 이름 모를 철새의 도래가 나른하다. 한껏 차려입은 신부의 연지곤지 고운 자태처럼 산길 물길 정겨운 굽이길마다 오색 향연 잔칫상이 푸짐하다.

가을.
그 찬란한 소멸의 진리는, 삶의 뒤안길을 휘돌아 내면의 울림으로 다가가는 지름길이다. 높고 푸른 하늘과 구름, 만산홍엽과 잔잔한 바람의 조화로운 채색은 아무리 깊은 상처의 골짜기라도 기꺼이 찾아들어 용서와 사랑, 갈등과 대립의 애증을 쓸어 담고 겨울로 가는 마차를 이끌고 떠난다.
가을.
가을은 깊은 상념과 반전의 계절이다. 인고의 세월을 후후 쓴웃음으로 정돈케 하고, 탄식의 시간을 찢어 버릴 수 있는 마침을 제공하며, 새로운 기약을 준비할 수 있는 겨우살이 너머의 개화(開花)를 선사한다.

봄꽃의 아름다운 개화는, 가을이 제공한 낙엽의 넉넉한 품으로부터 소생한다. 그래서 소멸은 생명이고, 생명은 곧 소멸과 소멸 이후 하나님의 심판까지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한일서 5:12)”.

창조주 하나님의 심판은 선(善)과 악(惡)이 기준이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심판의 기준이다.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은, 마치 제 자식이 제 부모를 몰라보고 앞집, 옆집 사람을 부모로 여기는 것과 같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生靈)이 되게 하신 창조주를 외면하고 부정하면 영원한 멸망의 불지옥 심판을 면할 수 없다.

특히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이 인간을 믿거나 이미 죽은 인간의 사상이나 철학을 숭배하는 우상숭배자들을 괴멸하는데 심판의 진노가 준엄하다.

가을.
깊은 사색과 내면의 울림, 스쳐 지날 수 있는 연민과 돌이킬 수 없는 미련, 그리고 기꺼이 삭히고 빗장을 열 수 있는 마음의 조화가 고옥한 계절이다. 가을은 어김없이 만감(萬感)을 채색한, 새로운 가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제공한다.

가을이 제공한 그릇은 그리 크지 않다. 화려하지도 않다. 버릴 것은 버리고 담을 것은 담을 수 있는 소박한 심령 그릇이다.

적으면 적을수록 풍요를 느낄 수 있는, 무소유를 담는 그릇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오히려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부끄러움을 깨닫게 하고, 소중한 생명 가치를 감사케 하며, 가치 있는 생명 존립 이유를 정립케 한다. 그래서 가을은 스승의 계절이다.

가을.
남은 인생 여정 어떤 가치로 살아갈 것인가. 벌거숭이로 태어나 지금까지 수고하고, 입고 먹었으면 그 사회에 기여할 가치를 찾는 것은 당연한 도리가 아닐까.

그저 자식 걱정 다반사로 점철된 시간을 연장해서 자식에게 재산이나 물려주고픈 안달복달의 황혼이라면 가을이 제공한 심령 그릇은 이미 깨진 육골의 늪이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사탄, 마귀, 귀신, 우상숭배자)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하나님 자녀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로마서 8:14-16)”.

해질녘 기운이 내려앉는다. 휘익 작은 회리바람에 낙엽이 뭉쳐 구른다. 이 모양 저 모양을 뽐내던 뭉게구름이 사라진 하늘은 잿빛이다. 주말에 비 소식이 있다.

가을비 한 소금에 성큼성큼 다가올 겨울이다. 화사한 봄꽃 씨앗을 덮어주고 기꺼이 나목(裸木)이 된 가을의 헌신은, 무엇 하나 지나칠 수 없는 창조주의 경이로운 섭리를 전율케 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가 2:10)”.

가을.
올 가을엔 사랑하자.
진실한 고백으로 내민 손을 꼭 붙잡고, 영원한 사랑의 주인공이 된 것을 마음껏 기뻐하자.


하민국 목사  웨민총회신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