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교수 칼럼] 죽음 五題

[전대열 교수 칼럼] 죽음 五題

문형봉 2020-10-11 (일) 22:09 4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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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죽음은 모든 사람을 두렵게 한다. 죽는다는 것은 모든 생물의 자연법칙이거늘 어째서 지각이 있는 사람들이 이 자연스러움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가? 나이가 어느 정도 들었다하면 “빨리 죽어야지” 하는 말을 자주 하게 되지만 정말 빨리 죽고 싶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나이가 많아지면 여기저기 몸에 이상이 생기고 이를 극복하려고 온갖 보약을 다 먹어보지만 그렇게 신통한 효험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김형석교수 같은 어른은 백세를 넘기고도 글 쓰고 강연 다니는데도 전혀 지장이 없으니 많은 이들이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모범을 보인다. 이제는 ‘백세인생’노래가 전혀 생소한 말이 아님을 건강한 노인들이 증명한다. 모두 아는 얘기지만 진시황은 죽지 않는 묘약을 구하느라고 동남동녀(童男童女) 천명을 제주도까지 파견했다고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생물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엄청난 규모의 병마용(兵馬踊)으로 무덤 둘레를 사방으로 뒤덮고 아무도 파헤칠 수 없는 남산만한 무덤을 조성한 것은 이미 죽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기에 생전에 그 공사를 마무리했던 것이고 천년의 세월을 넘어도 유적으로 그는 영원히 살아남았다.


지금도 우리는 매일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마주친다. 웰빙에 이어 이제는 어떻게 죽음을 잘 마무리하느냐 하는 웰다잉을 연구하고 준비하는 이들이 많다. 품위와 존경을 잃지 않는 죽음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노인에게 오는 치매와 알츠하이머, 파킨슨 같은 병들이 즐비하게 지켜서있는 노경에 접어들면 젊었을 때의 패기는 사라지고 신판 고려장의 별명을 가진 요양원에서 마지막 생을 불태우게 된다. 대부분은 가난하지만 설혹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없는 병석에서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도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좀더 정신과 신체가 건전할 때 사회적 나눔을 실천하기도 하면서 인생의 보람을 느끼는 것이 참다운 웰다잉이다.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겨주고 있는 죽음이 하나둘이 아니지만 요즘 우리나라는 코로나19라는 감염병 때문에 미증유의 고통을 겪고 있다. 이는 팬데믹으로 번져 전 세계를 마비시키는 대재앙으로 변했다. 중국 우한에서 발원한 것이 오히려 미국에서 가장 크게 번지는 통에 수백만 명이 확진판정을 받고 10만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심지어 미국 트럼프대통령을 비롯하여 영국 총리, 브라질 대통령까지 감염되어 전 세계를 공포 속에 몰아넣었다.


우리나라는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모범 방역국으로 자찬하는 편이지만 최근 감염증가 추세는 걱정꺼리다. 이 와중에 터진 게 북한해역에서의 해수부 공무원 피살사건이다. 그가 월북을 했는지 여부는 알 길이 없지만 어업 지도선에서 그가 어떻게 바다에 빠졌는지도 밝히지 못하면서 ‘월북’으로 단정한 군 발표에 대해서는 납득되지 않는 점이 너무나 많다. 더구나 자기네 영역에 들어온 민간인을 구출하지 않고 바다에 떠있는 채로 사살하고 불태웠다는 것은 북한정권의 야만성을 그대로 보여준 것으로 유엔 등에서 철저히 조사해야할 인권문제다. 그의 죽음은 평범한 공무원의 행적을 놓고 정치적 논란꺼리로 등장하여 하루 빨리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는 주장 외에는 더 진전하기도 어렵다. 이런 와중에 나는 추석전후 불과 열흘 안쪽에 네 사람의 친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등졌다. 장명식은 경북대 3학년시절 4.19혁명을 주동했다. 오랜 세월 당뇨를 앓았지만 기업을 경영하여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그의 따님은 전직 국회의원이다. 그는 생전에 4.19정신 함양을 위해서 사용하도록 1억원을 공로자회에 기증하고 떠났다. 4.19국립묘지에 안장된 장례식에는 많은 동지들이 모여 눈물을 흘렸다.


이광환은 왜소한 체구지만 의지와 정신력으로 뭉친 사람이다. 그는 일찍이 한국노총에서 노동운동을 하면서 군사독재 정권에 대항하여 투쟁을 벌였다. 한노총 정치국장을 역임하며 노총의 위상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나와 사회시민운동을 함께하며 누구보다도 가까운 동지의식으로 뭉쳤다. 그는 아예 시신까지 기증하여 유족들을 안타깝게 했지만 머리티끌 하나까지도 모두 사회에 남기고 갔다. 전주북중 전주교교 동기동창인 노훈과 정삼규는 죽으면서도 친구들을 생각하여 일체의 장례절차를 비밀에 붙이라는 엄명을 내리고 저 세상으로 떠났다. 추석 당일과 바로 뒤 끝에 운명했다고 하는데 노훈이는 장례를 모두 마친 후에 사후 부고로 끝마쳤고 정삼규는 행여 조문객이 있을까봐 빈소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서울공대와 연세대를 나온 두 친구는 동창친구들의 존경을 받으며 건강하게 사업운영을 해온 사람들인데 어느 사이에 스며든 병마에 아까운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사회에 조그마한 것이라도 아끼지 않고 나눠온 깨끗하고 푸짐한 정을 잊지 못한다. 비록 몸은 저 세상으로 떠났을지라도 언제나 웃으며 만날 날을 기약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



문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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