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 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1년이 가까워오는데도 감염병의 유행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사스와 메르스를 체험한 터여서 이다지도 무섭게 오래 갈 것이라고는 아예 생각하지도 못했다가 뒤통수를 되게 얻어맞은 느낌이다. 중국 우한에서 발원하여 국제사회의 싸늘한 눈총을 받았으나 공산주의 세계의 엄혹한 통제로 오히려 중국은 마치 코로나 청정국이라도 된 양 으스대고 있는 형편이다.
선진국으로 자타가 공인하던 미국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인도 브라질 독일 등 대형 국가들이 날벼락을 맞고 있으며 어쩌면 통제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고 있지 않나 심히 염려스럽다. 특히 미국은 하루 확진자가 20만에 이를 정도로 확산세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다행히도 미국의 화이자와 모더나가 백신 제조에 성공하고 세계보건기구에 사용 승인을 신청해 놓고 있어 곧 예방주사가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유행 초기에 중국에서의 유입을 차단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다가 대구에서의 대유행을 겪었지만 그뒤 소강상태를 유지해 왔다. 근자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또 다시 유행조짐이 심해지는 것은 당국의 강력한 거리두기와 마스크 독려로 가라앉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와중에 죽어나는 건 단연 개인영업자들이다. 사람이 모이면 안 되는 감염병의 특성상 식당을 비롯한 모든 업소들이 문을 닫거나 축소영업이 불가피한 사정이다. 퇴근시간에 맞춰 한참 신바람이 나야할 술집과 노래방조차 코로나가 번지는 원산지처럼 지목되고 있으니 문을 열고 있다는 것이 죄인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대형 집합장소인 교회는 초창기의 대유행을 초래한 원죄 때문에 모든 교회에서 찬송가조차 부르지 못하는 수난을 겪는다. 온라인 예배, 원격 강의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이런 사정이 너무 오래가고 있어 경기전반이 침체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정부에서는 국민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도와주기 위하여 지난번 총선 직전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12조원이라는 전대미문의 재난위로금을 지급했다. 이에 대하여 합법적인 매표행위라는 비난이 없지 않았지만 경제를 부드럽게 변화시킨 것까지 나무랄 수는 없다.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피해가 큰 영업자를 선별하여 재난위로금을 지급하게끔 여야가 합의하여 아예 예산안에 포함시킨 것은 매우 잘했다는 칭찬을 들을 만하다.
코로나 창궐로 택배사업과 가전제품 등이 활기를 띄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영화 연극 음악 등 공연 분야는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는 아니지만 문화가 없는 삶의 고독과 절망은 우리의 정신세계를 좀먹는다. 그 와중에도 나훈아 콘서트가 공전절후(空前絶後)의 대히트를 기록한 것은 공연장이 문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절묘한 KBS의 기술적 승리였다. 게다가 덤으로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왕이나 대통령이 있느냐?”는 나훈아의 일갈이 요즘 시국과 맞물려 언론을 흔들었다.
미쓰트롯과 미스터트롯이 뽕짝을 뛰어넘어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현상도 문화의 갈증에 목마른 대중에 영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시점에 세종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음악극 ‘녹두꽃은 영원하리’는 오랜만에 보여준 수작이었다. 녹두(綠豆)는 콩의 일종인 식물이지만 많은 이들은 ‘녹두’하면 “아하! 전봉준”할 정도로 동학혁명을 연상한다. 백성들의 살림을 보태줄 생각은 시궁창에 처박아버리고 오직 가렴주구(苛斂誅求)에만 열중했던 조선조 말의 사또들의 행패에 저항하여 대창과 낫 삽과 괭이로 무장한 농민군이 관아를 점령하고 나중에는 전주성까지 점령하여 이른바 전주화약(全州和約)으로 고을마다 집강소를 설치하게 만든 게 동학혁명의 진행과정이다.
인내천(人乃天)을 기치로 내건 동학사상에 기초한 혁명의 물결은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과의 결전에서 허무하게 패퇴했지만 그 정신은 면면하게 살아와 3.1만세운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를 기려 정부는 5월11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 동학혁명의 정신을 되새기게 한다. 그 본고장인 정읍시에서는 해마다 여러 가지 행사를 거행하면서 커다란 자긍심으로 국민을 일깨운다. 정읍수제천(井邑壽齊天)은 삼국시대 가요로 유일하게 그 가사가 전해지고 있다.
정읍시는 전국제일의 단풍으로 알려진 내장산을 품고 있을뿐더러 이승만이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선언한 곳으로도 유명하며 신익희 서거로 조봉암이 추모표를 싹쓸이한 곳이기도 하다. 박재표의 정읍환표사건 폭로도 4.19혁명의 단초를 연 것이었다. 전통적인 저항의 도시가 된 것은 민초들의 고난스러운 삶과 평등세상을 이룩하려는 정신이 있기 때문이며 이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 ‘녹두꽃은 영원하리’다. 수제천연주단은 창립된 지 25년으로 점차 그 활동범위를 넓혀가고 있으며 국내외 석학들이 수제천에 대한 연구로 세미나를 여는 등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가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번 세종회관 공연은 서울시와의 공동주최였다.
문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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