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 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지난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모든 국민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참혹한 한 해’를 보냈다. 메르스와 사스를 겪은 전 세계의 나라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발원하자 쉽게 지나가겠지 하는 안정적인 전망으로 팬데믹에 대응하는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심지어 세계보건기구(WHO)까지도 이에 대한 사전경고나 대비책을 제시하는데 미흡했다. 가장 많은 회비를 내는 중국의 발원 사실을 은폐하려 한다는 비난까지 받으면서도 책임자의 자세는 그 타령이었다. 몇 달이 흐른 다음 코로나 창궐이 대유행으로 번질 즈음에야 마지못해 경고를 냈지만 이미 방역의 골든타임은 지나간 후였다.
한국은 초창기에 중국에서의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면 지금과 같은 낭패는 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전문가들의 건의를 무시한 문재인정부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지만 K-방역이 세계적 자랑거리라고 오히려 큰소리치고 있으니 두뇌구조가 다른 모양이다. 게다가 윤석열 제거에만 골몰하던 법무부는 최고의 집합장소인 교도소 방역에는 손을 놓고 있다가 동부구치소 한 곳에서만 958명의 확진자를 냈다.
교회 요양병원 콜센터 등에서도 많은 환자가 나왔지만 구치소 한 곳에서 이처럼 많은 확진자가 나온 것은 순전히 인재(人災)다. 윤 내쫓기에만 몰두했다가 엉뚱한 몇 만 명의 수형자들만 골탕을 먹은 셈이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그동안 금기시해 왔던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문제가 지상에 떠올랐다. 이명박은 17년형이 확정되어 수감 중이며 박근혜는 30여년 형에 대한 재상고심이 1월14일 확정된다. 이들에 대한 사면에 대해서 문정부나 여당 측은 아예 입도 뻥긋한 일이 없다. 다만 지지자들이 SNS를 통하여 간간히 들먹였지만 큰 관심을 받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재판 결과가 확정되지 않으면 사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조건이 갖춰졌거나 갖춰질 시점이 되었다. 때를 기다렸던 것처럼 여당 대표 이낙연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이낙연은 기자출신으로 국회를 거쳐 전남지사와 국무총리를 역임하며 승승장구하다가 여당 대표에서도 압승한 기린아다.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 사면을 거론했다는 것은 청와대를 비롯한 여당 지도부와도 물밑 논의가 상당히 진척되었음을 암시하지 않겠는가.
사면은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으로 나뉘는데 전직 대통령은 특별사면 대상이다.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지만 사전에 법무부의 심리를 거쳐 건의해야 하는 수순이다. 세계 어떤 나라든지 대통령에게 사면권을 부여하고 있어 이를 남발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특히 저개발국가에서 이런 현상이 심하지만 미국의 트럼프는 퇴임을 앞두고 자신의 측근들을 사면으로 풀어주고 있어 사면 남용이라는 비난도 받는다. 러시아의 푸틴은 현대판 차르의 별칭을 들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언젠가 퇴임했을 때 안전판을 확보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이른바 ‘퇴역 대통령 사면법’이다. 권력 가졌을 때 미리 퇴임 후에도 처벌받지 않는 법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셀프 사면이다. 세계의 독재적 대통령은 대부분 뒤가 구리다. 천년만년 권력을 휘두를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예방책을 세워두려고 한다. 이번에 정부와 여당이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진 공수처법은 자유 민주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법이라고 총공격을 받았지만 대통령과 가족의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묘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서는 야당의 거부권까지 삭제하는 ‘다수 독재’의 입법행위를 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사후 안전에 대한 마무리 수순까지 밟는 걸 보면 문정부도 켕기는 것이 많은가보다.
이러한 안전판을 확보하지 못했던 이명박과 박근혜는 퇴임과 탄핵으로 물러난 후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재임 중 저지른 부정과 부패는 단연코 용서하지 못할 범죄로 치죄되었다. 나는 박정희와 전두환 시절 그들의 고문과 투옥을 이겨내며 감옥살이를 했지만 마지막에는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특별사면으로 대전교도소에서 풀려났다. 교도소에서 입던 한복을 그대로 걸치고 나와도 기분은 좋았다. 자유는 평등보다 앞선다.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토크빌은 신생국 미국을 돌아보며 자칫 다수결에 의한 민주정치가 합법이라는 탈을 쓰고 독재화할 수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문재인정부가 장악한 여당에 국회의석 과반수를 훨씬 넘는 대권을 맡기고 그들의 ‘독점욕’에 질질 끌려다니고 있다. 부정을 질타하면 그것이 ‘공정’이라고 설레발을 친다. 오죽하면 교수들의 신년 사자성어가 아시타비(我是他非)였을까. 그런데 사면을 거론한 것은 보선 대비든, 야당분열책이든 화합을 의미하기에 환영 받는다. 감옥의 고통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광주에서의 원죄에도 불구하고 전두환도 사면되었다. 이 박 두 사람도 하루 빨리 풀어줘 국민과 마주하는 게 정치의 큰 수단이 될 것이다.
문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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