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 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사회와 국가의 모든 현상은 구성원들의 창조적인 발상이 바탕이 되어 발전한다. 새롭고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내면 처음에는 기득권층의 거부반응이 먼저 나오게 된다. 오랜 세월 가지고 있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계층에서는 새로운 문제제기를 반사적으로 거부한다. 그들은 새로운 길을 가기 싫다. 지금까지도 넉넉하고 편안한 삶을 누려왔는데 구태여 가던 길을 바꾸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이다. 아니 새로운 길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크다. 현재를 잘 지키기만해도 충분한데 뭐가 아쉬워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고 할까. 행여 잘못되기라도 하면 현재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머뭇거리게 만드는 최대요인이 된다. 새로운 길을 택하면 부귀영화가 더 커질 수 있고 자손만대에 복락이 함박눈처럼 쌓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적게 먹고 적게 싸는 게 상책이라는 무사안일에 빠지는 것이다. 더구나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빼앗기는 것으로 생각되는 아이디어늕 애초부터 쳐다보지도 않으려고 한다. 이것이 보통 인간들의 사고방식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기득권층의 변화거부를 강제적인 힘으로 꺾을 수는 없다. 자칫 그들의 반격에 부딪치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해충돌을 회피하고 상대를 설득하며 이해시키는 방법을 찾으려한다. 이게 쉽다면 세상은 공정하고 평화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것이 사회 현실이다. 사람의 심성은 눈곱만큼이라도 자기가 손해라는 생각이 들면 죽기 살기로 저항하고 거부한다. 이해충돌(利害衝突)이 격화되면 엄청난 갈등이 유발되고 개인끼리는 원수가 되고, 사회적으로는 단체적 충돌로 이어지며 국가적 대결은 전쟁이 발발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 번지고 있는 이른바 좌파진보세력과 우파보수세력의 대결은 전형적인 이해충돌이며 스스로 그 구성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상대편을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극열한 방법과 언어로 공격하려고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이해가 아니라 나름대로 자기의 소신과 신념이라는 마법에 스스로를 가두고 오직 상대 공격에 매달리는 것이다. 논리도 필요하지 않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그것이 진리라고 우겨대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다. 조국과 윤미향을 둘러싼 어처구니 없는 난전(亂廛)이 가히 시장판을 꼭 빼어 닮았다.
이번에 더불어민주당 소속의원인 윤건영이 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자칫 우리 국회를 난전으로 몰아갈 태풍의 눈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구나 이 개정안과 똑같은 정책을 통합당에서도 내놨기 때문에 기득권층의 두터운 벽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엿보인다. 그렇다면 공직선거법을 어떻게 고치겠다고 해서 그런 것일까. 국회의원은 당선횟수에 상관없이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국민이 뽑아주기만 하면 계속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법으로 정해져 있다. 모든 나라의 국회의원들도 연임횟수 제한규정이 없어 내각책임제 국가인 일본같은 나라는 10선 15선도 수두룩하다. 우리나라에도 김영삼 김종필 박준규 이기택 같은 국회의원들이 모두 7선이상을 연임하며 정치지도자로 군림한 바 있다. 3선이상이 되면 중견 또는 중진의원으로 딱지가 붙어 국민이 알아주던 말던 지도자연(指導者然)하는 실정이다. 군대에서 밥그릇 숫자를 따지는 것처럼 국회에서는 철저하게 선수(選數)로 대접받는다. 지방자치제는 4선연임이 제한된다. 단체장과 의원이 똑같다. 한번 쉬고 또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국회의원도 그렇게 하자고?
입법권을 쥐고있는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으려고 할까? 국회의원은 겸직을 금하고 있어 다른 직업 활동을 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일반 국민이 생각하기에는 엄청나게 많은 세비를 국민의 혈세로 지급하고 회기중 불체포 특권을 누리게 하며 국회 발언에 대해서는 형사상 소추를 면해주는 것은 다른 일에 관여하지 말고 오직 국가경영에 대해서만 정신을 집중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회의에 성실하게 출석하지 않거나 졸거나 이석(離席)이 자심하다. 특히 3선중진급이 되면 유권자를 대하는 태도도 거만해지고 의안심의에도 매우 불성실하다는 것이 기자들의 평이다. 초선이나 재선의원이 갖는 열성 또는 새로운 아이디어 개척에도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들의 속 마음은 오직 당권의 향배와 자신의 위상제고 그리고 청와대에서 발탁하여 장관이 되고 싶다는 욕심에 꽉 차있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국회의 활성화를 막는 주요인이다. 경쟁을 하려고 하지 않는 타성에 젖으면 결국 국민만 손해다. 윤건영의원의 발의는 참으로 신선하다. 다선의원들의 눈치보기를 과감하게 뿌리친 용기로 4선연임 제한이 실현되기를 격려하며 갈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