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이 넘쳐난다.
요즘 언론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자성어’(四字成語)가 있다면 ‘내로남불’이다. 이 말이 ‘사자성어’이긴 하지만 ‘고사성어’(故事成語)가 아닌 이유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 있다. 각자의 진영에서 서로를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 을 말한다. 사실 이 말이 최근에 만들어졌고, 그 내용이나 용도가 전혀 교육적이지 않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 말은 남이 할 때는 비난하던 행위를 자신이 할 때는 변명을 하면서까지 합리화하는 모습을 지칭하는 말로 일컫는다.
이것은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거나 다른 사람의 잘못이라고 함께 묵인하는 잘못들”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사고가 보편적인 상식과 논리가 되는 사회는 참으로 불행하다.
선한 양심이 무기력해지고, 법의 기능이 약화되거나 이용을 당하는 것이다.
너도 나도 “내로남불”이다. 남에게는 엄격하지만 자기 자신에겐 너그러운 태도, 즉 자기 합리화다. 도덕적 타락이요 가치관의 혼동이다. 그야말로 우리나라는 ‘내로남불’이 넘쳐나는 사회이다. 책임 사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건강한 사회에서 멀어져 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것이 사회 저변으로 확산되어 걱정이다.
옛날에 욕심이 많은 농부가 살고 있었다. 극심한 가뭄이 시작되자 천지신명께 비가 내리면 “우리 논에만 솔솔” “우리 논에만 솔-솔”와 달라고 빌었다. 그러자 갑자기 비가 퍼부어 논둑이 터지려고 하니까 이젠 “남의 논에만 솔-솔” “남의 논에만 솔-솔”와 달라 빌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아전인수(我田引水)격 인간이라 했다. 즉 “남이야 죽든지 말든지 자기에게만 이익이 돌아오면 된다.”는 인간을 말한다.
“내로남불”은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한다. 삶의 질을 형편없이 무너지게 하고 사람들을 타락시킨다. 각자 자중하며 자신을 살필 필요가 있다. “내로남불”이 아니라 “내 탓이오”를 먼저 외칠 때 사회의 안정을 기대할 수 있다. 우리는 왜 이런 일을 할 수 없는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내로남불”과 함께 “님비현상”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어떤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것이다. “님비현상”이란 (Not, In, My, Behind) “내 집 주변은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도 “아전인수식” 인간이나 “님비현상의 사고방식” 그리고 “내로남불” 의 마음자세를 가진다면 국가발전은 물론 선진한국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에 비춰진 대한민국의 모습은 분단으로 인한 불안감과 허구한 날 반목과 대립으로 얼룩진 싸움질로 사회였으며 정치권의 모습은 항상 국민들의 눈살 찌푸리게 하였다.
어느 국가나 정치 지도자들, 성직자들의 모습을 보면 그 나라의 발전과 문화의 척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상대방에 대해 온갖 험한 말을 입에 담던 이들은 언제나 정의와 공정을 외쳐댄다.
그러나 막상 본인의 치부와 가족들에 대한 편법의 문제들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와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다.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자신만을 내세워 버티고 오히려 내 말은 모두가 옳은데 잘못을 지적한 당신들이 나쁘다는 식의 괴변을 늘어놓는다.
상대방에 온갖 험한 말을 입에 담던 이들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막상 자기 자신이나 가족들의 잘못은 온갖 구실로 변명한다. 그런 사람을 따르는 집단은 “그럴 수도 있지” “그것은 법이 테두리 안에서 한 일이라~~” 라고 오히려 옹색한 변명으로 수호한다.
오직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자신만을 내세워 버티는 행위만 할 뿐이다.
내 정당, 내 단체 회원, 내 조직원이니까 감싸고 비리를 감추어주고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추궁과 징벌을 가한다면, 멀지 않아 썩은 나무처럼 쓰러지고 말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은 “내로남불”이 넘치고 있다.
이제 소수의 특권층이 아니라 다수의 서민을 위한 일이면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미국의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토마스 프랭크(Thomas Frank)는 가난한 서민들이 미국의 부자들에게 투표하는 것을 두고 이렇게 외쳤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겠는가?” 이 말은 소수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라는 것이다.
뼈아픈 자기 성찰이 없인 지역과 나라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내로남불’의 사회가 아닌지 반성하고 되돌아볼 때이다.
이인혁시인 /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