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오는데
아직도 여름의 기운이 그대로 느껴지는 계절을 지내고 있다.
코르나19로 비대면 세상이라 어디 다니기가 두렵기만 한데 그래도 집에 있기가 지루해 동네 한 바퀴를 돌다가 젊은 아가씨가 후드티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남자 청년은 가죽 잠바를 입고 길거리로 나와 다닌다. 정말 추워서인가 아니면 철을 몰라서인가 아직 추석이 되려면 3주간이나 남았는데 이상한 기분이 든다.
올해는 유독 비도 많이 오고 태풍도 심했다. 그래도 어느덧 들녘에 펼쳐진 곡식들이 하나 둘씩 익어가고 있다. 하늘도 깊어 보이고 산마다 채색되어 가는 나뭇잎들이 조금씩 가을을 열어가고 있나 보다.
오스트리아의 시인이며 소설가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는 “가을날”이라는 시에서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이 시는 종교적 신비주의를 바탕으로 인간 실존의 근원적인 고독과 불안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계절의 변화가 우리에게 많은 상념을 갖게 해 준다.
수해를 입은 가정이나 농민들은 여름을 돌아보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반면 더위를 무릅쓰고 어떤 과업을 성취한 사람은 나름대로 보람을 느낄 수도 있다. 아무튼 자신의 상황에 따라 지난여름을 반추(反芻)하면서 이 가을을 맞지 할 일이다.
여름은 모든 생명체가 발육하고 성장을 위한 에너지를 쏟아 붓는 계절이다.
그런 면에서 여름을 어떻게 보냈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생활에서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물론 이번 여름은 우리에게 많은 시련을 안겨 주었다. 코르나19와 비와 태풍이 그렇다. 그 시련이 있었기에 가을의 결실이 더욱 돋보일 수 있으리라.
많은 이들의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계절 가을이 돌아오고 있다.
무더운 여름은 지나가고 조금은 차분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다주는 가을에 이 계절에 어울리는 나의모습을 새롭게 연출하여 보자
낙엽이 지는 거리를 걸으며, 혹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산행을 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세상에 더럽혀 지고 복잡해져 있는 나의 내면의 세계를 다시 한 번 정리하는 계절이 되어야 하겠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매우 멀리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 “나”라고 말 할 수 있다.
이제 인생에 있어서 외적인 방향으로 향하던 에너지를 지적인 세계, 즉 정신적 세계로 전환시키는 것이 가장 큰 과업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물질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정신적인 세계로 전환하지 못하고 인생을 어둡게 살아간다.
그러므로 이 좋은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자신의 자아를 지금까지의 관념으로부터 벗어나서 보다 새로운 자신이 되어 보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일을 하게 되었을까? 이것이 내 삶의 전부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이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힌다.
이때 깜깜한 밤의 심연(心緣)을 헤매면서 절망에 빠져드는 사람들도 많다. 과거에 그렇게 살지 않았더라면, 과거에 어떻게 했더라면, 지금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인데 하는 후회도 따라온다.
그러므로 생활 속에서 얻어지는 가을이라는 만남을 통하여 아픈 사람에게 큰 보약을 복용하는 것과 같은 자연의 심오함을 맛보자.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새로운 희망을 드러내 보자. 또한 가을이 오는데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삶의 보람을 가질 수 있는 일들을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
[이인혁 교수]
* 미국뉴멕시코한인학교 교장
* 월간 한국시 . 월간 문학세계 詩 부분 신인문학상
* Trinity International University (Ph.D in Religion) 명예 철학박사
현 재
* 한국신학교수협의회 대표회장
* 한국문단문인협회 대표회장
* 재단법인 평화의길국제재단(NGO) 법인대표/이사장
* 싱글미션국제선교회 한국대표
(Single Mission International Evangelical Associ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