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 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금년운세가 어떻게 돌아갈지를 신년 초에 점쟁이에게 물어봤어야 하는데 때를 놓쳤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전염병이 중국에서 시작했다고 소문이 돌았을 때 날쌔게 중국에서의 입국을 막아야 된다고 감염학회와 의사협회가 건의를 했지만 정부에서 묵살하는 통에 아직까지도 코로나19는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세계에서도 유수한 모범 방역국으로 칭송을 받고 있으니 문재인은 운도 좋다.
감기수준이라고 큰소리치던 미국은 세계 최대의 감염국으로 낙인 찍혔으나 트럼프는 애써 무시한다. 이런 살풍경한 팬데믹의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는 21대 총선을 치렀으며 정부수립 이후 한 번도 없었던 재난위로금을 전 국민에게 나눠주는 바람에 더불어민주당은 대승을 거뒀다. 합법적인 매표행위라고 야당이 들고 일어날만한데 한 푼이 아쉬운 국민의 주머니를 채워주자는 명분에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 통에 한우 값만 올랐다는 얘기는 쓴웃음을 자아내게 하지만 여당과 정부는 크게 성공한 셈이다. 나는 애초부터 50%의 취약계층만 지원해야 된다는 주장을 폈지만 먹혀들지 않을 것은 예상한 바다.
국회의석의 과반수를 훨씬 뛰어넘은 여당은 개원과정에서 야당 몫으로 관행이 이어온 법사위를 자기네가 차지함으로서 야당의 반발을 사 협치의 꿈은 이슬처럼 사라졌다. 오만과 교만으로 무장한 여당은 자칫 국회상임위 전부를 독차지할 기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허약한 야당으로 전락한 미래통합당은 새로운 전기(轉機)를 마련하겠다는 김종인을 중심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야당특유의 전투적인 모습은 아예 찾아볼 수 없으니 딱하기만 하다. 정치의 발전은 여당의 리더십도 필요하지만 야당의 돌파력이 여당을 자극하여 함께 나아갈 길이 생겨난다는 기본조차 터득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렇게 방사능에 피폭된 거북이처럼 방향감각을 상실한 사람들이 어리둥절하고 있는 판에 개성에 있는 남북연락소가 처참하게 폭파되었다. 최고 존엄을 자처하는 김정은은 아예 얼굴도 내비치지 않고 이제 30을 갓넘은 여동생 김여정의 명령으로 남북교류의 상징으로 알려진 연락사무소 건물을 산산이 부숴버린 것이다. 건물을 폭파방식으로 철거하는 수는 흔하지만 아무리 높은 건물도 제 자리에 곱게 주저앉히는 법인데 개성에서는 애먼 뒷 건물까지도 유리창이 모두 떨어져나가게 폭약을 사용하여 한국을 향한 허장성세를 보여줬다.
폭파는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고 김여정이 퍼부은 독설과 막말에 대응하여 청와대가 “감내하지 않겠다.”고 모처럼 분노를 표했다. 이도훈 평화교섭본부장은 미국으로 날아가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한국정부 입장은 오직 ‘평화갈구’였다. 평화를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평화는 상대방과의 물러설 수 없는 약속이지 언제라도 파기할 가능성이 있는 상대와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 핵심이 북핵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동안 북핵폐기를 위해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인내와 협상을 진행해 왔다. 트럼프가 싱가포르와 하노이 그리고 판문점에서 김정은과 세기의 만남자리를 가진 것도 궁극적인 목표는 북핵폐기였음을 모르는 바보는 없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유엔은 중국과 러시아까지 동참하여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시행중이다. 북한경제는 지금 매우 어렵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 중국과의 교류에 매달리지만 유엔제재에 동의한 중국의 입장도 곤혹스럽기는 매한가지다.
북한은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평화와 자주를 내건 좌파정권 문재인정부를 짓눌러 “왜 미국에 대해서 자주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느냐”고 힐난한다. 한미워킹그룹에서 미국과 상의하는 한국을 친미사대주의로 비난한다. 자주를 강조하면서 여당 정치권의 좌파를 자극한다.
개성에서 기업을 운영하던 기업인 단체는 오직 자기네의 잇속만 생각하여 미국을 강력비난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대로 따르면 북한의 핵문제는 건들지도 말고 일방적으로 항복하라는 투로 들린다. 여기서 우리는 한결 냉정한 사고로 사태의 진행을 바라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북한정권이 노리고 있는 궁극적인 목표는 핵보유는 기정사실화하고 유엔의 경제제재를 풀 수 없으면 한국이 자주적으로 북한의 경제를 도와달라는 것이다. 북한지원은 하나의 민족, 국가의 자주성, 전쟁 없는 평화 등 온갖 미사여구가 모두 나열된다. 한국의 입장은 과연 그럴만한가. 유엔제재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한국 역시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거미줄처럼 늘어선 유엔의 제재 틀을 뚫고 나갈 여력이 있을지 지극히 의심스럽다. 북한의 노림수에 걸려든다면 핵의 공포 속에서 자칫 그들의 꼭두각시나 허수아비로 전락하지 않을까 큰 염려다. 개성폭파를 무서워하면 진다. 이럴수록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벼랑 끝에 선 북쪽에 질질 끌려다니지 말라.
문형봉 기자 [저작권자 ⓒ 헤드라인코리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