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한마디가 특별하나?

윤석열의 한마디가 특별하나?

문형봉 2020-08-11 (화) 08:24 4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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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윤석열이라는 사람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것은 아마도 박근혜대통령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때도 그는 정권에 역린(逆鱗)하는 기개로 사퇴하지 않을 수 없는 경지로 몰렸으나 끝내 좌천을 받아드려 탄핵으로 박근혜가 물러날 때까지 엎드려 지냈다. 그리고 촛불정권이 들어서자 아연 각광을 받고 화려하게 검찰의 요직을 거머쥐었다. 말하자면 현 집권층과는 동지였던 셈이다. 그는 젊어서부터 검사노릇만 해온 사람이지 진보좌파 성향의 386세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을 것이고 검사로서의 본분을 다하다가 정권의 눈 밖에 났던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행정부에 속하는 검사가 정권의 입맛을 따르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이 올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자기의 신념을 속일 수 없다고 생각하여 곧이곧대로 나가다가 손해를 자청한 셈이었다. 운 좋게도 그는 오랜 세월을 견디지 않고도 새로운 정권의 시작을 보았고 새 정권에서는 그를 크게 기용했다. 박근혜를 쫓아낸 정권이 박근혜에게 탄압을 받은 윤석열을 자기편으로 끌어드린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는 단박에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되었고 문무일의 임기가 끝나자마자 고검장을 거치지 않고 건너뛰어 대검찰청의 수장에 오른 것이다. 누가 봐도 그는 이 정권의 혜택을 가장 크게 본 사람 중의 하나였으며 그래서 과거의 검찰총장들이 했던 것처럼 정권의 충견(忠犬)이 되리라고 지레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검찰이 떠맡은 사건들은 대부분 전 정권의 적폐(積弊)를 청산하는 일이었다. 부정부패를 일삼았던 정권으로 낙인찍힌 박근혜 팀은 최순실을 비롯하여 청와대에서 좀 놀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적폐의 범주에 들어갔다.


 전 정권에 대한 심판은 새로운 집권자의 뜻에 따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해온 ‘적폐’였지만 촛불정권 역시 이를 그대로 답습했다. 이것이 자칫 정치보복으로 비춰지면 국민들의 저항이 만만찮을 것은 당연하다. 현재도 태극기부대 등에 의해서 문재인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이 더욱 심하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보노라면 아직도 우리나라의 민주화는 요원한 것인가 하는 자괴를 금할 수 없다. 아무튼 윤석열검찰은 초장부터 칼날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에게는 가장 튼튼한 배경이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이다.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가차 없이 검찰권을 행사하라”는 큰 명령을 공개리에 내렸다. 임명권자의 이 한마디를 절대적으로 믿은 윤석열은 조국사태가 터지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조국에 대한 수사를 감행했다. 수사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조국은 청와대 민정수석에서 법무부장관으로 검찰총장의 윗자리에 버젓이 올라앉았다. 그쯤 되면 수사를 중단하고 모든 것이 잘못된 정보로 인한 것이었다고 면죄부를 주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있는데 윤석열은 다르다. 오히려 수집해놓은 많은 정보를 활용하여 조국일가의 파렴치한 부정부패의 진상을 파헤쳤다. 이 때 벌어진 공방전은 아마도 다시 볼 수 없는 구경거리다.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조국을 규탄하는 시위대와 옹호하는 시위대가 맞불을 지르는데 과연 민주주의가 좋기는 좋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냈다. 양쪽 모두 숫자를 과장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널따란 광화문과 좁은 서초동을 놓고 200만이다, 100만이다 하면서 고무줄처럼 늘이기만 했으니 괜한 국력만 낭비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걸작은 서초동을 돌아본 여권유명인사가 “떡 보니 100만이더라”는 우스개 같은 말이었다.


이런 소용돌이를 겪으며 조국일가는 재판에 회부되었고 아내 정경심은 구속까지 되었으나 수사검사들은 추미애가 법무부장관으로 온 후 윤석열 팀으로 낙인된 사람은 자리를 옮겼다고 하니 어떤 결과를 맺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신임검사 임명식장에서 윤석열이 검찰총장 자격으로 인사말을 한 것이 화제에 올랐다. 청와대에서는 애써 논평을 삼갔으나 여당의원들은 너나할 것 없이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지 한 목소리로 ‘윤석열 사퇴’를 부르짖었다. 그의 인사말은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헌법에 명시된 원칙을 얘기했을 뿐이다. 


신임검사들은 국가 공권력을 국민의 입장에서 행사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부정부패를 일삼고, 나라에 혼란을 가져오는 행동 일체를 바로 잡아야 하는 사명감에 가득 찬 사람이다. 그들에게 “자유민주주의의 허울을 쓴 독재”를 배격해야 된다는 소신을 심어주는 일은 검찰총장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요 권리다. 이 말을 ‘반정부 투쟁선언’이라고 공박(攻駁)하는 꼴을 보면 뭔가 단단히 켕기는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박정희나 전두환도 자유민주주의를 제창했지만 그 허울을 벗으면 독재자였다. 똑똑한 검사가 되려면 허울과 탈을 잘 벗겨내야만 한다. 그래야 진실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한마디가 특별한 것이 아닌데도 그를 옥죄는 여권의 비난은 국민들이 이해할 수 없는 수치스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