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래를 바라보는 사회

[칼럼] 미래를 바라보는 사회

이현 2020-06-11 (목) 20:40 4년전  


   

[칼럼]

 

미래를 바라보는 사회

 

일본은 조선침략을 시도해 1905년 을사조약으로 조선을 찬탈하고, 1910년 한일합방으로 완전히 식민지화 하여 지배하며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우리나라는 36년간 일본의 식민지배하에서 주권을 빼앗긴 채 고통과 괴로움에 시달렸다. 당시 직접 고통당한 사람들이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함에도 일본은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은폐(隱蔽)하기에 급급하다.

 

사실 당시 조선의 위정자들의 무능으로 나라의 국권을 잃어버린 것에서 비롯된 비극이었다. 나라의 주권과 경제력을 빼앗긴 국가와 국민은 고통과 착취를 필연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80년 전 마을에서 일본군에게 끌려가 위안부로 학대와 고문을 당했던 소녀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고향에 그녀를 기다리던 삶은 존재하지 않았다. 끔찍하다.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지 반세기가 가까워진 1991814일에야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은 일본군 위안부이였다고 처음으로 세상에 공표했다. 그 후 여러 할머니들께서 나는 위안부였다고 증언이 이어졌다.

위안부로 살았다는 것은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고,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다.

 

이제 전국 50개 지자체와 해외에 여러 곳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 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와 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일이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데 외국인들도 공감하여 해외에서도 소녀상 건립이 가능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은 민족과 역사가 처해진 운명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

일제 강압 시절에 조선에 젊은이로 살았다는 것이 죄는 아니다.

그들이 나라의 국난(國難)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인간답게 살아남으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 뼈아픈 역사의 사실이다.

우리 모두 그런 역사의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다시 생각 할 볼 것은 그 치욕스러운 위안부 소녀상을 국내외 여러 장소에 세워야 했는가

그 정체불명의 소녀상은 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 무슨 이유로 그렇게 세워야만 하는 것인지? 정확한 답변을 듣고 싶다.

 

일본의 침략역사(侵掠歷史) 배후에 무능했던 조선에 위정자들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그 늑대 같은 일본군들에게 소녀들은 끌려 나가 온갖 추행을 당했는데, 이제는 우리 선조들의 잘못을 비판하며 반성하며 나라의 어려움을 막고 튼튼한 대한민국을 건설해 가는 미래지향적 생각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는 가.

그리고 오늘에 있어 과거의 일에 너무 집착하고, 과거를 이리저리 재단하다 미래를 눈앞에서 놓치고 있지나 않은지 생각해 보자.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는 동물이다. 과거를 기억하고 옛 생활에 잠겨 너무나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

사실 누구에게나 과거라는 울타리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과거에만 얽매여서는 안 된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꾸 지나간 옛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또 어떤 사람은 과거의 어두웠던 시절을 잊지 못하여 얽매여 사는 사람들도 있다. 과거는 지나간 시간이다. 한번 흘러 가 버린 물이다.

 

사람을 헬라어로 안드로포스(ανδροπος)라고 한다. "위를 바라보는 자“ "앞을 바라보는 자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큰 의미가 있다. 위를 바라보는 자는 희망을 가진 자요 비전(vision)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사회를 바라보면 나에게, 우리나라에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꿈이 있다.

세계 인류가 이렇게 발전하는 문명 속에서 살아 갈 수 있는 것도 미래에 삶의 목표를 두고 노력한 결과물인 것이다.

과거에 집착하기보다는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요, 성공 할 가치가 충분한 사람이다.

우리나라 위정자들에게도 과거 청산에 몰두하기보다 미래의 역사적 대망(待望)을 펼쳐 나기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라는 것을 힘을 주어 말하고 싶다.


이인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