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웅의 시론] 우울증 100만명, 분노 사회, 국민정신건강 경종

[최충웅의 시론] 우울증 100만명, 분노 사회, 국민정신건강 경종

문형봉 2024-02-08 (목) 00:41 9개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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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웅 언론학 박사


우울증 환자가 100만명을 넘었다. 환자 수가 32.8% 급증했다. 최근 5년간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진료받은 사람은 906만명을 넘는다. 국민 정신건강의 심각한 위기 징후다. 이 병은 우울감과 무기력 또는 짜증과 분노의 느낌을 지속해 유발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다양한 정서·신체적 고통도 동반한다.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거나 그 시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한국인의 정신건강이 위태로운 상태다. 스트레스와 우울 불안 무기력 증세에 순간의 충동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극단적 선택은 전년 동기 대비 8.8% 급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부끄러운 자살률 1위는 지속되고 있다. 아동·청소년 행복지수 꼴찌에 정신질환으로 인한 사회적 범죄도 잇따른다. 분노와 증오의 범죄에 정치테러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울 신림역 행인들에게 무차별 흉기난동, 경기도 분당 서현역 묻지 마 충격사태, 이런 사건들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흉악 범죄다. 유사범죄가 계속되자, 살인을 예고하는 글들이 온라인에 잇따라 올라 모방 범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시민들의 불안감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여·야 정치인의 잇따른 테러로 큰 충격에 빠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피습된 지 23일 만에 여당 국회의원도 피습 당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치 테러는 정당화할 수 없는 명백한 범죄행위로 엄단해야 한다. 수사결과에서 밝혀지겠지만, 혐오·증오 정치와 양극화에 휩쓸려 극단적인 분노와 증오에 빠져 충동적으로 저질러진 악덕한 범죄행위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우울증 환자 증가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분노가 심각한 정신건강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사회 주변에 불만과 화가 가득해 보인다. 취업은 힘들고, 창업은 가시밭길이다. 끊임없는 경쟁과 차별, 과도경쟁으로 상대적 박탈감에 피폐해지고, 개천에서 용 나오는 신분 상승은 기댈 벽이 없다. 저출산·고령화에 고금리·고물가·고유가로 경제성장은 발목이 잡혀있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청소년들이 늘고, 취업 좌절에 청년들이 겪는 우울증도 심각하다. 우울증 환자 중에서 20대 여성이 12.1%로 가장 많고, 2018년에 비해 2배 넘게 급증했다. 결혼도 어렵고, 육아도 막막하다. 가계부채는 늘어나고, 삶의 만족도가 최악이다. 다양한 요소가 작용한 결과로 청년 취업난·경제적 난관의 사회적 외부요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불안한 환경요인은 우울증을 비롯해 분노조절장애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전문가에 따르면 분노는 내면 낼수록 점차 증폭되고, 할수록 커지는 분노로 인해 분노 자체가 중독이 된다고 한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화를 내거나 폭력을 행사한다면 '분노조절장애'를 의심해봐야 한다. 분노조절장애는 자신의 분노를 통제, 조절하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질환이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간헐성 폭발장애'라고도 한다. 분노조절장애는 인간관계에 문제를 유발할 뿐 아니라, 불의의 사고로 돌변하게 되고, 방치하면 혈압을 상승시키는 등 신체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스마트폰 사용시간이 긴 청소년일수록 우울 증상과 정신건강 위험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하루에 스마트폰을 4시간 이상 사용하는 청소년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보다 스트레스, 자살 생각, 약물 사용 등 행동 관련 건강 문제를 겪을 위험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초·중교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하며, 대만은 18세 이하 청소년이 스마트폰 등에 중독되면 보호자에게 벌금을 부과한다. 청소년의 스마트폰 중독을 막을 수 있는 예방교육을 의무화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가 놀랄 만큼 짧은 기간에 산업화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달성했지만, 삶의 만족도나 행복지수 등도 조사 대상 국가 중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신건강에 대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최근에는 마약류 중독이 국가적 문제로 떠올랐다. 우리 국민의 정신건강 문제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중대 과제다.

정부는 지난 12월 5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정신건강정책 비전 선포대회'를 열고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정신건강 문제를 국정 어젠다로 삼아 예방, 치료, 회복 등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가 정신건강을 주요 국정 어젠다로 삼아 적극 해결에 나서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무기력과 우울감에 고통받는 개인들을 외면하는 사회는 안전하고 통합된 발전을 할 수 없다.

정신건강을 이해하고 자신의 정신건강을 인식하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을 선진국은 대부분 시행하고 있다. 호주에선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정규교육 과정에 정신건강 항목을 포함시킨다. 의사소통, 관계 맺기, 학교폭력 대처법 등을 가르친다. 조현병 같은 중증정신질환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이해시키는 교육도 필요하다. 정신건강 문해력을 키우는 교육이 절실한 시점이다.

미국인의 추앙을 받는 사상가이자 정치가, 과학자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분노로 시작하면 치욕으로 끝난다."고 했다. 내 안에 있는 분노는 녹아내리고 타인의 분노에 대해 지혜롭게 대처할 능력을 길러야 한다. 구약성서(잠언16:32)에는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했다. 

모두가 행복하려면 잠재된 분노를 치유해야 하며, 분노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 정신건강이 유지돼야 진정한 선진국이다. 

[최충웅 약력]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경남대 석좌교수
YTN 매체비평 출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예오락방송 특별 위원장
방송위원회(보도교양/연예오락)심의 위원장
언론중재위원회 위원
KBS 예능국장·TV제작국장·총국장·정책실장·편성실장
중앙일보·동양방송(TBC) TV제작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