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봉 칼럼] 나눔과 사랑을 생각합시다.

[문형봉 칼럼] 나눔과 사랑을 생각합시다.

문형봉 2021-09-10 (금) 22:49 3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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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저널

편집인 문  형  봉


우리말에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이웃이 나의 삶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기에 이웃과 함께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쉽게 나누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며 사랑을 나누는 일에는 서로가 지켜야 할 예의와 책임이 따른다. 이웃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 자기가 선택한 사람만 좋아한다면 좋은 공동체를 만들 수 없다. 


가족이나 친지 등에 대한 사랑은 “관계의 의무”에서 비롯된다. 나눔과 이웃 사랑은 내가 희생하면서 베푸는 행위이다. 그래서 이웃 사랑이 성경에서 새로운 계명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자본주의의 발전단계에 서 있다. 여기에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웃 사랑이 사회적 윤리와 도덕으로 확립되어야 하겠다.


“20:80 사회”라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의 전체 부(富) 중에서 80%를 인구의 20%가 가지고 있으며 나머지 20%를 80%가 나누어 소유하고 있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IMF 사태와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5:95 사회” 하더니 지금은 “1:99 사회”가 되었다고 한다. 1%가 전체의 99%를 갖는 사회가 되었다는 말이다. 너무 급격히 진행되었기 때문에 “10:90 사회”라는 명칭을 붙일 겨를이 없게 되었다. 중산층 붕괴, 빈부 격차. 부익부(富益富)의 심화, 양극화 현상. 아직도 뉴스의 제목으로 계속 나오는 말이다. 


가난한 무명의 화가가 있었다. 그는 각종 대회에 계속 응모했지만 계속하여 낙선했다. 그러나 그는 가난한 가운데서도 화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그림 소재는 항상 농촌 풍경이었는데 고향에 대한 향수와 농촌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어느 날 그의 친구가 한 부자를 데리고 와서 이런 제의를 했다.


“자네, 지겨운 농촌 풍경 좀 그만 그리게. 그림이 팔리겠나? 이제부터는 누드 그림을 그려 보게. 이 신사분께서 전량 사겠다고 하시니까 말일세.”


땔감을 살 돈조차 없던 그는 매일 자기의 작품을 땔감 대신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눈을 감고 잠시 기도를 한 후 이렇게 딱 잘라 말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안군요. 사양하겠습니다. 예술에서 진짜 귀한 것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내가 시골 풍경과 농부를 즐겨 그리는 이유는 그들의 진실한 생활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무명의 화가는 자신의 믿음과 취향대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깊은 신앙심과 이웃 사랑에서 나온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그림이었다. 그는 끝까지 자기가 사랑하는 일에 대한 집념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바로 “만종”, “이삭줍기” 등으로 유명한 밀레이다. 가난 가운데서도 올곧은 믿음과 사랑 실천을 지켜 가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 빛을 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와 비교할 수 없는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기를 뛰어넘어 생존 투쟁을 위한 전선에서 있다. 개인의 욕구 충족과 첨단 이기주의로 전쟁과도 같은 현실에서 과연 한 모금의 물, 한 줌의 식량이 없어서 죽어가는 이웃의 생명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양극화 해소는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이다. 가난은 죄가 아닐진대 가난으로 인하여 죽음보다 더한 상대적인 고통의 삶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이 시대.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세계 1위라는 오명을 남기고 있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걸을 수도, 생명을 연명할 수 없는 소외된 이웃, 절대 빈곤의 이웃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것은, 결국 고귀한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일이 될 것이다.


영화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나눔과 사랑”을 생각하게 한다. 항상 낮은 곳에 머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따뜻한 사제 이태석 신부의 육신은 떠났지만 ‘아프리카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를 추모하는 열기가 한국교회를 넘어서 사회 크게 타올랐다. “너희가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란 성경 말씀처럼 이태석신부는 8년간 수단에서 가장 낮은 이의 모습으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떤가? “나눔과 사랑”으로 자기의 명예와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나눔 문화’ 정착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매월 12일을 ‘나눔의 날’로 정하지 않았는가. 극빈층인 기초생활 수급자와 준극빈층도 엄청나게 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식사랑이나 가족사랑은 참으로 정성이 지극하다. 사랑을 잘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모르는 이웃 간에도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훈련이 된다면 훌륭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갈등이 더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기 전에 지도자들의 대각성이 필요하다.


문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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