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도 함께 버린 쓰레기

양심도 함께 버린 쓰레기

문형봉 2020-01-04 (토) 22:16 4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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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오래된 얘긴데 나는 본란을 통하여 아름다운 쓰레기 얘기를 썼던 기억이 난다. 쓰레기가 아름답다니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힐난할 독자도 계시겠지만 줄거리를 알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어떤 도시의 길거리 모퉁이는 항상 주민들이 내다버린 온갖 잡동사니 쓰레기로 넘쳐났다. 심지어 음식물찌꺼기까지 버려져 냄새와 침출수로 인해서 근처에 가기도 어려웠다. 여름철이면 파리와 모기가 모여들고 길고양이와 유기견까지 합세하여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지자체에서는 이에 따른 민원을 해결한다고 비싼 CCTV를 설치하여 무단 쓰레기 투기자를 적발하려고 했지만 별무효과였다. 골머리를 앓던 시에서는 똑똑한 공무원 한 사람의 건의를 받아드리기로 했다. 그것은 쓰레기 투기장소를 깨끗이 청소한 다음 그 자리에 아름다운 꽃 화분을 설치해놓자는 아이디어였다. 기연가미연가 큰 자신은 없었지만 궁여지책이었다. 더러운 쓰레기장이 화려한 꽃 전시장으로 변한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다. 아름다운 화분 옆에 쓰레기를 갖다버리는 사람이 없어졌다. 그 자리는 동네사람들이 모여들어 꽃구경에 여념이 없게 되었다.

 

자기 집에서 멋진 화분을 가져다놓는 이들도 생겼다. 발상의 전환은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촉매제가 되었다. 오랜만에 이 얘기가 생각난 것은 요즘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알려진 충격적인 대형 쓰레기 투기장면을 보고서다. 강남에서도 재건축 얘기가 가장 먼저 나왔던 은마아파트 지하실에 2300톤의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아무도 믿기 어려운 얘기지만 사실이다. 나도 수십 년간 아파트생활을 하고 있어 공동주택의 생활상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편이다. 어떻게 지하실에 그처럼 많은 양의 쓰레기가 반입될 수 있었을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 아파트가 재개발 가능성이 가장 많고 수익이 어마어마하게 클 것이라는 기대치에 부풀어있다는 사실이다. 벌써 20년이 넘게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과 허가당국의 견해 불일치로 막상 시행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닌지 짐작할 뿐이다. 아파트주민도 아니고 재개발 투기를 할 형편도 안 되기에 흘러 다니는 소문이나 듣는 처지였는데 지하실 쓰레기더미는 참으로 충격적이다.

 

현재 집 주인의 거주는 40%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는데 주인 없고 언제 개발이 될지 시간문제인 아파트니까 너도나도 쓰레기를 버린 것이 아닐까. 관리사무소가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되는데 그들 역시 손을 놓고 지냈다는 얘기가 된다. 애정을 가지고 언제 개발이 되더라도 내 집은 내가 깨끗이 간직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쓰레기가 지하실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2300톤으로 추산되는 쓰레기를 수거하려면 수백 대의 트럭이 동원되어야 하고 작업인부의 품삯까지 치면 수십억의 생돈이 든다. 집 주인, 관리사무소, 구청 등 관계자들이 이를 방치한 것은 개발이 시행되면 철거를 맡은 건설회사에 쓰레기까지도 모두 떠넘기겠다는 속셈이 있어서일 게다. 참으로 무책임한 사람들이다. 이 쓰레기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들은 60%의 세입자들이다. 쓰레기가 쌓이면 반드시 몹쓸 벌레들이 꼬여든다. 파리와 모기는 기본이고 바퀴벌레 등 주민의 건강을 해치는 온갖 해충들의 집합소가 된다. 전염병도 염려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지는 이들은 아무도 안 나선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책임은 구청에 있다. 주민의 건강, 불법 쓰레기단속, 계도(啓導)기능까지 구청이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지하실쓰레기는 불법이니까 투기자를 색출하고 그들에게 비용부담을 지게 해야 한다.

 

이러한 쓰레기 투기가 비단 은마아파트 한 곳에만 있는 일이 아니어서 더 큰 사회적 문제다. 지금 전국 깊은 산골에 가면 땅 주인 몰래 갖다버린 쓰레기가 산을 이룬다. 멀쩡한 공장을 빌린 다음 기계를 들여놓고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쓰레기만 쌓아놓은 현장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심지어 임대도 하지 않고 잠가놓은 자물쇠를 뜯어내고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투기한 사람도 있다. 모든 쓰레기는 종류에 따라 꼭 버려야 할 장소에서만 처리해야 되는 게 있다. 병원 쓰레기는 특수처리가 기본이다. 건축물 역시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 처리장소가 구분된 게 많다. 이들을 모두 한데 섞어 버리면 환경오염으로 인하여 사회전체가 피해를 입는다.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사람들도 모두 가족이 있고 더불어 살아야 할 이웃들이다. 그런데 자기의 조그마한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깨끗해야 할 우리 주변을 더럽히는 행위는 양심을 팔아먹는 행위임을 왜 애써 외면하는가. 특히 쓰레기 전문업자들의 행태가 의심되는 것은 쓰레기를 가장 많이 취급하는 전문회사이기 때문이다. 해양투기 역시 철저한 단속이 필요하다. 후쿠시마의 방사능 오염수를 태평양에 희석시킨다는 일본정부의 발상은 양심까지 버리겠다는 반인류적 행태다. 쓰레기에 대한 경각심은 우리가 지켜야 할 기초상식이다.

 

전 대 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