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부영 박사 캄럼, 개만도 못한 인간? (The people inferior to dog)

장부영 박사 캄럼, 개만도 못한 인간? (The people inferior to dog)

이창희 2021-03-24 (수) 21:34 3년전  


* Calvin Theological University 장부영 교수 * 


개만도 못한 인간? (The people inferior to dog) 


요즈음에 와서 특히 의리가 없는 사람을 보고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이나 하듯, 주인을 섬기든 백구(개)가 주인을 끝까지 생각하며 철거된 집터 위에 앉아 주인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는 사실이 알려져 각박하고 매정한 인간에게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사연은, 백구에게 정을 붙이며 혼자 사시다가 세상을 떠난 한국의 어느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할아버지는 세상에 홀로 남아 오로지 백구에게 정을 붙이며 6년 동안 함께 살다가 어느 날 불행히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던 집마저 철거되어 빈터만 남았는데, 이러한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구는 그 후에 고아가 되어 들판을 떠돌며 먹을 것을 구해 먹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가슴을 짠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 백구가 4년 동안 계속 그 집 빈터에 망부석처럼 앉아 주인 할아버지를 기다렸다는 사실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을 부끄럽게 만드는 장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사연은 특히 정치권에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자기가 섬기든 당이나 주군(?)을 매정하게 버리고 돌아서는 변절자(?)나, 더욱 사람의 마음을 뼈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배신자(?)들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듯하다.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이러한 사건이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미국에서까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데, 더욱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이러한 변절자들로 인해서 대통령이 탄핵 되고 정권이 바뀌며 나라가 혼란스러워진다는 사실이다. 물론, 개중에는 자신이 감옥에 가면서까지 주군에 대한 충성으로 의리를 지킨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변절자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 자신의 행동을 변명 내지, 합리화하고 있지만, 국민을 설득시키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본질적으로 인륜(humanity)과 도덕성(morality)을 중히 여기는 인간의 본심을 설득시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변명은,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며, 심지어 주군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까지 하며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언젠가 말했지만,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나라를 위하여 의로운 일이라고 변명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변명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하며 고통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도리어 고통스러울 것이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풀지 않는다면 역사의 심판을 받아 영원히 불행한 인간이 될 것이다. 이러한 행동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나라를 위한 정의(Justice)가 아니라 그들의 사리사욕에 사로잡힌, 정치적 계산이 깔린 내심(속마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얼마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거나 참회하기보다 더욱 열심히 자신을 미화하며 변명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성경에서 말하듯 화인(火印) 맞은 사람들같이 보인다(딤전 4:2). 반대로 솔직하게 후회하며 사람들 앞에서 참회와 사과하는 이들의 모습은 과거의 배신을 잊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연약한 모습과 아름다운 양심을 동시에 보는 것 같다.


예수께서 우리 인간에게 전해주신 구원의 복음은 인간의 죄를 지적하기보다 이미 죄인이 된 모든 인간에게 그 죗값을 치르라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돌아서서 그 죗값을 갚아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길만이 살길이요 구원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이 이 길을 택하지 않아 멸망으로 들어가게 되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심지어 세상만사가 이러한 성경 원리에 의해서만이 해결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보니 답답할 뿐이다. 필자는 처음부터 이러한 원리로 나라의 난관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점점 더 꼬여서 악화될 뿐, 답이 없을 것이라고 말해 왔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되었을 때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바로 이러한 해답의 방법을 촉구하였다. “참회로 과거를 청산하고 믿음으로 미래를 열라”는 것이다. 전자가 없이는 후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 믿음은 거짓 믿음일 뿐이며 개선하지 않는 행동은 인간의 감정일 뿐이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군대가 가나안 땅의 아이(Ai) 성을 공략할 때에, 규모가 작은 아이 성을 얕보고 단지 군대 3,000명만을 보냈다가 대패한 적이 있다(수 7:4~5). 물론, 당시에 이스라엘 군대는 승승장구하는 불패의 대군이었기 때문에 자신만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는 믿음의 사람으로 생각이 달랐다.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이스라엘이 무적의 대군을 가지고도 왜 작은 아이 성 사람들에게 대패했을까 하는 생각에 고민하게 되었다. 결국, 여호수아는 그 원인을 하나님의 뜻에서 찾게 되었는데, 그 직접적인 원인이 바로 이스라엘의 범죄에 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아간(Achan)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물(聖物)을 도적질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국난을 타개하는 방법은 오직 이 죄악을 제하고 속죄받는 길밖에 없기에, 즉시 아간과 그 일당들을 처벌하고 악을 제한 다음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갔던 것이다. 이로써 이스라엘의 죄악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다시 믿음으로 승승장구하게 된 것이다(수 7:6~7:29).


이러한 성경 원리는 우리 개인에게도 정확히 적용된다. 우리가 범죄 하게 되면, 먼저 범죄의 원인을 자기가 아닌 타인이나 다른 것에 돌리려는 못된 성품이 있다. 그러므로 이로 인하여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게 되며, 결국, 믿지 않고 자기 죄를 회개할 생각을 하지 못해 죄 가운데 죽게 된다. 예수께서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 8:24)고 말씀하셨다. 인간은 이미 죄를 범한 죄인이기 때문에, 머리를 들 수 없이 초라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머리를 들고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죄를 벗어 버리는 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아야 한다(히 12:1~2).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공인들도 자신의 공적인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개인은 개인의 사적인 죄가 무엇인가를 깨닫고, 비전을 가지고 미래를 믿음으로 바라볼 때 소망이 넘칠 것이다.



이창희 기자 <저작권자 헤드라인코리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