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의 시발점

스토리텔링의 시발점

이현 2020-01-31 (금) 11:03 4년전  


  

숱한 독서와 여행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책은 나에게 간접 경험을 갖게 해주었고, 낯선 땅의 나그네 길에서는 서정을 북돋게도 했으며, 생생하고 심도있는 산 경험을 주기도 했다.

또한 나는 독서 중에 여행 충동을 곧잘 느끼곤 하며, 가고 싶은 고장의 많은 정보를 충분히 수집한 다음에야 길을 떠나고는 했다.

나는 요즘 자전적인 글이나 여행기를 쓸 때 일본의 사소설 작가들처럼 스토리텔링의 형식으로 쓰곤 한다. 그렇게 쓰는게 어쩐지 자유롭고 편안하며 또한 보다 문학적 형상화가 가능한 듯 싶기 때 문이다. 언어적 형상화로서 나의 삶과 여행중의 경험과 느낌을 재구성해 보고 싶어서다. 여행기와 자기 이야기는 경험과 소재의 관계처럼 서로 얽히고 꿰여 언어라는 형태로 재탄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의 관계는 매우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여행은 곧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는 또한 여행이 되기도 한다고 본다. 요헨 포그트가 지적한 바와 같이 20세기 후기에 대두된 후기 구조주의문학의 시각에서 표현한다면 스토리는 소재나 모티브들의 얽어짜임으로 생겨난 것이니 말이다.

이와 같은 생산적이고 쌍방향적인 공생의 역사는 태초에 인간 역사가 시작되었던 때로 거슬려 올라간다.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인간들은 실제 경험과 스스로의 상상속 여행, 모험 등을 서로에게 자세히 들려주곤 했다.

집 떠난다또는 길에 나선다.’라는 개념으로 비롯된 여행이라는 낱말은 하루또는 하룻만의 여행을 뜻하고 고대 프랑스 말 ‘jounnee'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나는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여행인 클럽한국여행작가협회를 만들었고, 기관지도 만들었으며, 인도 정부의 초청으로 일본 여행작가협회와 함께 인도 전역을 누비는 심층여행을 한 바도 있지만, 여행이라는 아이디어를 사용해서 네러티브를 구성해서 모티브를 얽어매어 글을 쓰는 작가는 과문인 탓인지는 모르지만, 별로 없는 것 같다. 스토리의 진행을 이끌어 나가고 그렇게 작동시키는 것은 모티브라고 보는 일본 사소설 작가들에게서 그 비결을 찾아볼 수 있다.

여행은 풀롯을 구성하는데 있어 좋은 착상을 갖게 하는 모티브. 여행에는 속성상 순화적 구조가 담겨져 있다. , 일단 시작을 하고,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여행하는 동안에 뜻하지 않았던 순간을 만나게 되고, 마지막으로 여행을 끝맺는다. 즉 결말로 끝난다.

 

호머의 <오디세이>,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 동화 <빨간 모자> 등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옛날이야기, 그리고 문학의 모태인 동서양의 신화들은 대체로 여행 구조를 띄고 있다.

모험담이나 탐험을 소재로 한 이야기나 신화에서는 주인공이 고향, , 물리적 풍요로움, 흰 토끼, 사랑, 의미, 진실 등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 세계를 여행한다. 이때 여행의 각 단계는 이야기 속에서 하나의 장이 된다.

또한 여행의 과정은 생활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 즉 시작 부분은 태어남과 어린 시절, 중간 부분은 성년 시절, 마지막은 노년기와 죽음으로 구성된다. 예컨대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순례자가 천국 혹은 지옥을 향해 위험한 길을 나선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삶을 여행에 비유한 우화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그밖에 다른 많은 전기나 평전 또는 자서전도 이와 같은 은유적 구조에 의존한다. 조라 닐 허스턴은 <길 위의 먼지 자국>에서 스스로를 순례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자각에서 그는 수평선을 향해 계속 걸어나가는 여행을 통해 어린 시절에 느꼈던 바람을 연상하며 여행담을 엮어나가고 있다.

 

여행을 통한 문학적 소통이 중요하다. 이는 우주적 관심에서 출발한다. 찰스 다윈과 아인슈타인 시대로부터 사람들은 이런 우주적 관점에서 상상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인간의 역사란 그저 찰나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 시간과 공간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불가사의하고 복잡하다는 것, 그리고 시간은 언제나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차츰 깨닫게 되었고, 이에 대해 당혹함과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마틴 에이미스의 <시간의 화살>은 주인공이 죽음을 맞는 시점부터 시간이 거꾸로 진행된다. 또한 노숙자의 극적인 삶을 그린 알렉산더 매스터스의 <스튜어트, 뒷걸음질 인생>에서도 <시간의 화살>에서 쓰인 것과 같은 네러티브 메써드로 주인공이 어떻게 그와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나 역시 최근 [국민일보]에서 나의 소자서전을 집필하면서 고정 연재 칼럼인 [역경의 열매]의 관례(출생 -> 현재)를 깨고 내 생애의 가장 비극적인 상황부터 네러티브방식으로 모두에 쓰면서 그 때문에 비극적인 상황으로 빠져들어가게 되는 과정을 역으로 서술함으로써 주어진 역경이라는 화두를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짤막한 자서전이지만 이를 마무리하면서 나는 자서전쓰기 과정도 여행 과정과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므로 자기 얘기 쓰기는 물론 여러 작문 방법에 관해 서술한 많은 입문서가 여행 구조를 원용해 쓰여 졌다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크리스토퍼 보겔이 쓴 <작가의 여행>은 칼 융의 심층심리학과 조세프 캄밸의 신화적 연구를 근거로 들어 작가의 여행과 여행기가 주는 문학적 성취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정신분석학과 신화비평을 문학에 원용하는 방법을 주로 연구해온 나로서는 내 삶이 여행작가 분야로 흘러갈 수 밖에 없었던 숙명을 새삼 느끼며 말년을 자위하고 있다. 그리고 자서전이나 기행문에 담는 모든 네러티브는 전형적인 여행 구조를 따라야 한다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순례와도 같은 인생의 순차적 플롯을 원용하려고 하는 나에게 있어 이러한 믿음은 하늘의 선물과도 같은 것이지만, 동시에 어쩌면 그 때문에 네러티브가 지나치게 합리화되거나 자칫 틀에 밖힌 여행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경각심도 아울러 갖게 된다.

어슐러 르 귄은 <작가의 길과 그녀의 작품>에서 글쓰기 경험을 길 없는 숲, 또는 미로(迷路)에서 길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비유한 바 있다. 이처럼 삶은 물론 여행이나 글쓰기 또는 문학하기란 시행에서든 미로에서건, 그 누구도 예측 할 수 없는 세계의 과정이라고 보고 싶다.

 

전규태

 

1933년 전남 광주시 출생.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53년 공군종군작가단과 함께코메트지를 편집,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 그간 발표한 시를 묶어 시집 <석류>발간.

그 후 시집 <백양로>(1965), <우수의 계절>(1980),

<흙의 신화>(1986), <네가 낳은 하늘>(1987) 등 시집을 출간.

1978년 하버드대, 1979년 컬럼비아대, 1982~84濠州國立大 객원 교수를 역임하였다.

한국문학평론가 협회상, 현대시인상, 모더니즘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양대학교·연세대학교 교수역임. 전주대학교 국문과 교수 역임

한국현대시인협회 국제분과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