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혁시인 수필] 눈을 감으면

[이인혁시인 수필] 눈을 감으면

이현 2022-12-14 (수) 09:59 1년전  


[수필] 눈을 감으면

 

살며시 눈을 감습니다. 눈 감으면 흐르는 시냇물의 평화가 마음에 밀려옵니다.

언제나 장대하게 펼쳐 볼 수 있는 눈감은 고요의 시간, 간간이 다녀온 이가 있는 천국을 보기도 하지만 이국땅, 미국 텍사스(Texas) 광야에 외딴 조그만 2층 카페에서 저 멀리 땅끝으로 풍덩 떨어지는 붉은 해에 얼굴이 아쉽기만 합니다.

 

그동안 보아왔던 수평선에 비해 지평선(地平線)은 가도 가도 끝이 없습니다.

지평선의 신기루에 매혹 당해 막상 가까이 다가가면 멀리 달아나고 결코 눈앞에 보는 대로 있는 것이거나 잡으려면 언제나 저 멀리 떨어져 있고 진홍색 커튼의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가 땅이라면 그대는 하늘입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멀리 바라보면 하늘과 땅이 하나 되어 빛과 구름으로 마주 보며 살아갑니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무언가 삭막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다가도 점점 더 멀리 나가 초원과 사막으로 떠나게 되면 그때부터는 내 과거는 모조리 사라지고 낮게 자란 풀뿌리들만 남아있는 먼 땅만이 눈 앞에 펼쳐지게 됩니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 듯한 고요와 드넓은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또 다른 낭만을 찾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아무것도 쥐어진 것 없이 느슨하게 흐르는 시간을 느끼며 정말이지 사소한 일도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눈을 감으면 내 얼굴에 와 닿는 옛 추억들이 별처럼 반짝이고 구름이 되어 흘러가 버리는 친구들은 가슴을 풀어 재치고 어디론가 길을 떠나갑니다. 이제 석양은 찬란한 노을로 길을 떠났습니다.

 

영원으로 이어지는 사다리에 분주히 오가는 이들은 누구일까.

눈을 감으면 어느덧 사랑하는 이도 저 높은 파란 하늘로 들어갑니다.

눈을 감아야 잘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내가 삶에 지쳐 어찌할 바 모를 때 내밀어 주던 친구의 손길에 따뜻함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던 사람을 용서한 후 후련해지던 마음과 맨 처음 사랑을 느끼고 온 세상이 그 사람으로 꽉 차던 열정이 식어 차디찬데

 

이 모든 것은 눈을 뜨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뚜렷이 보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눈을 감을 때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비로소 선명해지는 드라마를 봅니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그 사람이 진정한 내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길이 진정한 내 길입니다. 빛이 내려진 어느 날 밤에 어둠에 사라진 흔적을 지우고 작은 기억의 허공을 걸으며 진정한 자유를 누려봅니다.

 

눈을 감아도 시간은 흐르고 어쩔 수 없이 그 시간을 어떻게든 붙잡고 쫓아가 보려고 하는 것은 단지 내 마음만 더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었을까. 어쩌다 보니 여기에 있게 된 것이고 어쩌다 보니 거기에 있게 된 것이라 서로 길을 비켜주면 그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눈을 뜨고 다시 잠이 드는 시간까지 자연만이 가득한 곳에 머무르고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어찌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많지 않으랴. 올라서서 온 계단을 뒤돌아보니 아득합니다. 추억은 아름다운 과거뿐 아니라 아픈 과거도 날개를 펴고 날아오기도 합니다.

 

[이인혁시인]

 

시인. 월간 한국시 신인문학상, 월간 문학세계 문학상

한국신문방송총연합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