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혁시인 칼럼] 봄이 다시 피어난다.

[이인혁시인 칼럼] 봄이 다시 피어난다.

이현 2023-03-17 (금) 20:28 1년전  


봄이 다시 피어난다. 

 

해마다 봄바람이 남촌에서 온다더니 하늘에는 바람에 밀려 옅은 흰 구름이 흐르고 있다.

나뭇가지에 푸른빛이 짙어지고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바람은 이곳저곳 다니며 봄이 오는 소리를 알리고 봄이 햇빛에 바람에 실려 온다.

봄이 온다. 봄이 온다. 새롭게 시작하고픈 봄이 다시 피어난다.

구겨지고 바래진 기억, 그리움과 얼룩진 기억은 이젠 지워버리고 노란빛 세상 물들고 먼 길 떠났던 봄 손님이 기별도 없이 삐거덕 대문 열고 들어와 마당에 서성인다.

 

나뭇가지마다 파란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무심히 며칠 지나고 나니 화초의 새싹이 땅을 뚫고 올라온다. 봄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으면 아직은 덜 녹은 땅을 뚫고 나올까. 용기가 대단한 녀석들이다. 구만리 먼 곳에서 한달음에 달려오는 봄이여! 수줍은 가지마다 세상은 봄 사랑으로 온통 술렁이네.

 

한동안 보이지 않던 새들이 나뭇가지에 모여 노래를 부르며 봄소식 전하는 것을 그 뉘가 막을쏘냐. 햇빛이 창문을 뚫고 쏟아져 들어오고 따스한 봄빛이 유혹하며 바쁜 현대인들의 발을 멈추고 아련한 추억이 있는 곳으로 길을 안내한다.

 

높은 산에 눈이 다 녹고 얼음이 풀리니 시냇물은 불어나 땅을 적시고 내 가슴 얼음장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 들리고 봄은 오고 있건만 내 마음의 봄은 아직 멀기만 한데 아지랑이로 풀어 헤친 가슴에는 연분홍빛 꽃망울 터지고 봄은 사랑으로 온통 피어난다.

 

생각해보면 추운 지난겨울을 무사히 견디며 지나간 계절을 지냈다, 이제 또 한 해를 살아갈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그런데 세월의 흐름에도 그대로인데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봄이 오는 소리가 귓전에 들린다. 먼 산의 벚꽃 만발하고 뜰 안의 철쭉은 피어날 채비를 하고 있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약동의 계절이요, 새 생명을 태생케 하여 성장시키는 용수철의 계절이다. 봄을 영어로 스프링(spring)이라 한다. 그 어원을 보면 '뛰다, 튀어 오르다, 일어나다 등의 뜻으로 용수철의 성질처럼 위로 튀어 오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제 긴 겨울잠에서 어서 일어나자. 겨우내 깊숙한 아랫목으로 파고들기만 했던 이부자리 걷어차고 뻘떡 일어나자. 몸을 펴고 양팔을 뻗어 푸른 하늘을 향하여 기지개를 쭉 켜보자. 대 자연의 합창 소리에 우리도 조화롭게 추임새 넣으며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아지랑이 손짓을 따라 함께 길벗이 되어보자.

 

중국 남송의 시인 육유(陸游1125~1210)의 시()이다.

 

枕鳥聲殘夢裡(일침조성잔몽리),

半窓花影獨吟中(반창화영독음중)

베갯머리 맡 잠자리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았는데 창밖에 새소리 지저귀고,

홀로 시를 읊는 남 창가에 이른 봄을 알리는 매화꽃 그림자 비치네.

 

참으로 아름다운 풍광이다. 식물들은 지난 계절 어떻게 그 추위를 견디고 이리도 예쁜 모습으로 피어날까. 이제 봄 향기에 취하듯 겨울은 기억 저편에 묻어두고 저 ~ 만치 오고 있는 봄일랑 따뜻하게 맞이하자.

 

[이인혁시인]

 

시인. 칼럼니스트

한국신문방송총연합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