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웅의 시론] 야유·고성·팻말 없는 국회 약속, 국민은 지켜본다

[최충웅의 시론] 야유·고성·팻말 없는 국회 약속, 국민은 지켜본다

문형봉 2023-11-01 (수) 23:08 5개월전  

c9199755f0ef9cb13291430800343fc2_1698847675_4418.png
최충웅 언론학 박사 


여야 원내대표가 국회 회의장 내 팻말 부착과 상대 당을 향한 고성·야유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24일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전날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와 만나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동안 국회가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국민들 눈살 찌푸리게 했던 국회 회의장 내 고성이나 피켓 시위 등이 과연 사라질지, 아니면 얼마나 지속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야 원내대표의 이번 합의는 그동안 고성과 막말로 싸움질만 하는 국회로 낙인되어, 국민들 의 질타의 목소리에 대한 자성의 모습을 보여 늦었지만 다행이다. 21대 국회 들어 여야 대결 구도는 민주당이 압도적인 다수 의석을 차지한 다수당을 내세워 이전보다 더 심화해 극단으로 치달았다. 민주당은 다수결 만능주의를 통해 한때는 전체 상임위원장을 독차지하는 등 상대 당을 철저히 배제하는 국회 운영 방침을 고수하면서 결국 여야 대결 국면은 양극화됐고 정쟁은 고성과 막말로 치달았다.

본회의장에서 상대 당 지도부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라도 할 때면, 고성·야유는 물론 삿대질과 피케팅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본회의장이나 상임위 회의장에서 상대를 비난하는 정쟁 구호 팻말이 붙는 일이 일상화 됐고, 이를 빌미로 회의가 파행되는 상황도 다반사였다. 마침 본회장 방청석을 찾은 초등학생들이나 외국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성 욕설과 막말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었다.

2012년 국회 선진화법 도입 후 여야 의원들 간의 극한적인 물리적 충돌은 드물어 졌지만, 대신 상대방을 향한 야유와 팻말 등장은 갈수록 늘어났다. 특히 지금의 21대 국회는 아예 ‘막장 국회’로 불렸다. 특히 상임위원회 회의는 더 볼썽사나웠다. 회의 진행을 둘러싸고 몸싸움이 벌어지는가 하면 반말과 비속어가 수시로 터져 나왔다. 불과 얼마 전에도 국방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에서 고성과 비방 팻말을 이유로 국정감사가 파행됐다. 

국민의 정치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이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여야 지지율이 동반 하락해,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파(無黨派)가 제1당이 됐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4개 여론조사 기관이 참여한 전국지표조사(NBS)의 국가 주요 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는 15%로, 경찰(48%)이나 검찰(39%)보다 한참 뒤처진 꼴찌였다. “국회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81%였다.
 
이번 차제에 여야 합의 이행과 더불어 국회 대정부 질의 태도도 전폭적으로 확 달라져야 한다. 국무위원들을 불러다 놓고 면박을 주거나 다짜고짜 소리부터 지르는 의원들이 적지 않았다. 싸움닭처럼 질의 말투나 품격을 잃은 오만한 태도의 일부 의원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로인해 결국 여야 간 고성으로 이어지거나 회의가 파행되기 일쑤였다. 지난 6월 14일 시각장애인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의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예의를 갖추고 상대를 배려하는 질의로 여야 모두의 기립박수를 받았고, 여의도 안팎에서 큰 화제가 된바있다.

이번에 모처럼 긍정적으로 국민으로부터 환영받는 여야 합의를 국회 밖으로도 확대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최근 전국에 내걸었던 정쟁적인 현수막을 모두 철거했다. 지난해부터 상시 허용된 정당 현수막이 정치 혐오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커지자 취한 조치였다. 민주당은 이를 환영하면서도 자신들의 현수막은 ‘팩트’라며 여전히 걸어 놓고 있다. 국회에서 상대방을 향해 고성과 야유를 하지 않고 팻말도 들지 않기로 약속한 만큼, 국회 밖의 현수막도 모두 철거해서 솔선 수범을 보여주기 바란다.  

국회는 그동안 정치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고, 국민의 복리를 외면한 채 정파적 이익만 앞세워 만나면 싸우는 모습만 보여 왔다. 국회 업무에 매진하지 않고 본회의장이나 상임위에서 휴대전화로 가상화폐 거래나 하고, 회의와는 상관없는 일들로 논란이 많았다. 여야 원내대표의 이번 합의는 내년 총선을 앞둔 가운데 정치권에 대한 여론 비판을 의식해 '정쟁 자제'에 뜻을 모은 것으로 해석된다.

여야의 이번 합의는 바닥까지 추락한 국회에 대한 신뢰 회복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의원총회를 거쳐 전체 의원의 동의 절차가 남았지만, 여야 합의가 제대로 지켜질지는 오는 31일 예정된 윤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 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확 달라진 신선한 장면을 기대해본다. 여야 합의로 나온 이 약속이 지속적으로 이행이 가능한 국회의 선진 문화로 뿌리내리길 바란다.

이를 계기로 여야가 상호 비방이 아닌 존중의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여야의 협치와 민생 정책도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합의가 단순히 국회의 구호에 거친 외관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야가 서로를 존중하고 본격적인 협치에 나서는 계기로 이어져야 한다. 또 정쟁으로 허비했던 시간을 입법 활동과 심도 깊은 정책 토론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늦었지만 이번 계기가 21대 국회의 최대 성과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최충웅 약력]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경남대 석좌교수
YTN 매체비평 출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예오락방송 특별 위원장
방송위원회(보도교양/연예오락)심의 위원장
언론중재위원회 위원
KBS 예능국장·TV제작국장·총국장·정책실장·편성실장
중앙일보·동양방송(TBC) TV제작부 차장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