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평화의 길에 서서

[칼럼] 평화의 길에 서서

이현 2020-05-31 (일) 17:18 3년전  


 

[칼럼]

 

평화의 길에 서서

 

인류는 역사 이래 모든 사람들은 평화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전 세계는 진정한 평화를 누려보지 못했다. 그동안의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연속이었고, 지난 세월은 "전쟁과 폭력의 세기"였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지구에는 여전히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을 하는 국가들은 모두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 숨을 쉬며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정직하고 선한 이웃들이 언제부턴가 인간의 이기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로 무참히 죽어가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 주의 미니애폴리스에서 525,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경찰에게 체포될 때 무자비하게 목이 눌려 사망했다. 그리고 흑인에 대한 차별에 분노한 사람들이 항의행동을 일으켜, 그것이 폭동으로 발전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미국 사회가 이제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미국에서 평화는 사라져 없어지는 느낌이다.

이제 흑인들의 항의시위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영국과 독일, 네덜란드의 미국 대사관 앞에는 수백 명의 시위대가 몰려들어 "나도 숨을 쉴 수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미국 경찰의 인종차별적 과잉진압에 항의했다.

이번 폭동사태는 미국 내의 고질적인 백인우월주의와 다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진정으로 아쉬운 점은 미국의 트럼프대통령이 한마디라도 잘못했다. 너무 죄송하고 미안하다.”라고 한마디만 했으면 얼마나 좋겠는 가 말이다. 오히려 좌익” “폭동이니 하면서 강경 자세로 나가는 것은 무슨 깊은 뜻이 있을까? 질문하고 싶다.

 

문명과 전쟁의 저자이자 텔아비브대학의 아자 가트(Azar Gat) 석좌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사람속이 진화한 200만년 중 99.5%를 차지하는 수렵채집사회에서 생존과 번식을 위한 치열한 싸움의 과정을 통해 폭력성이 인간의 본성에 내재화되었다.”고 한다.

전쟁의 본질이 인간의 본성이건 문화의 산물이건 간에 인류 역사의 전개 과정 속에서 전쟁이 인류 문명의 발전과 맥을 같이하며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과학기술의 진보에 의한 부와 권력의 축적·집중·제도화는 그에 따른 사회체제의 변화·계층·구조화에 영향을 줬고, 그 과정 속에서 전쟁은 부와 권력을 얻는 수단이자 사회체제의 유지와 번영을 위한 수단이었다.

이제 인류는 지구상의 모든 개인과 집단이 다함께 공존할 수 있는 하나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 특정 국가나 민족, 종교를 위한 평화가 아니라 지구 전체를 위한 평화를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지구에서 인류가 실현해야 할 가장 큰 비전이 있다면 그것은 지구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그동안 인류는 지구라는 절대적인 가치를 잊은 채 국가, 민족, 종교, 지역 등의 상대적인 가치를 절대시하며 경쟁적이고 대립적인 문명을 구축해 왔다.

그러나 이제 인류는 그 모든 차이를 넘어 오직 진정한 평화로 가는 유일한 길을 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다 알 듯이 오늘날 북한이 망하게 된 원인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 가장 큰 원인은 공산주의사회주의때문에 망했다.

얼핏 들어보면 그렇게 좋은 이념이 없다. 그러나 누구나 똑같이 잘 먹고 잘사는 공산주의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3대를 이어 일당 독재 체제로 북한의 일부 지도자 계층만 잘 먹고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는 김일성 주체사상, 김일성 이단 종교라고 보면 맞다. 통일교, 신천지, 구원 파, 신앙촌, 어머니교회 등~ 모두 김일성 종교를 따라 하는 것이다. 북한은 자유 민주경제체제가 아니라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표방하다가 망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남한, 대한민국에는 북한의 체제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좋아하는 좌경 사상을 가진 사람이 너무나 많다. 현재 스스로 공산주의자가 되고, 일부 몰지각 한 좌경세력에 물들어 사는 이들이 그렇게도 많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것은 단지 의식주(衣食住)를 보장받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용으로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개나 돼지 그리고 올챙이로 살아가야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노예의 삶이나 돼지의 삶을 보고 사람답게 복을 받고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대에 노예는 가축 취급을 받았지만, 노동의 재생산을 위해 먹고 사는 것은 보장받았다. 그러나 노예는 동물 취급을 받으며 살았기 때문에 사람다운 삶이라고 볼 수 없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은 결코 노예처럼, 짐승처럼, 기계처럼 사는 삶이 아니다. 다시 강조하여 말하지만 자유민주주의는 사람답게 사는 것이며 개인의 자유를 누리며 평등이란 가치를 존중하고 우리가 아닌, 개인의 인권을 보장받아 힘을 합쳐 평화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최근 남한과 북한의 관계가 급진전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한반도에 영원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하나의 민족, 하나의 나라였지만 분단이 되어 가족들이 갈라지고 큰 고통을 겪고 있는데 남북한이 평화를 위한 간절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오직 국민들이 평화스러운 삶,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전 세계 국가들은 환영 할 것이며 북한을 향하여 도와주고 협력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평화의 길이 어려운 것은 김정은 일가와 몇몇 고위층들이 권력을 누리며 배불이 먹고 살자는 아주 나쁜 이기심 때문인 것이다.

대한민국도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상호교류도 이어지고, 유라시아 철도 건설 하게 될 것이지 핵을 포기 하지 않는 이상 조금도 평화의 한 발자국을 내 딛고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서의 평화로 가는 길은 전쟁이 아닌 공존과 공생이 핵심이다. 과거에는 집단의 평화를 위해 전쟁이 합리적인 수단이었지만,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이 보편화된 오늘날에는 전쟁보다 국제적 협력과 공조를 통해 평화를 얻는 것이 합리적이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대량 살상무기와 전쟁 속에서 보여준 인간의 잔혹함은 더 이상 전쟁이 평화의 길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런데 인류는 아직 평화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부족한지라 평화로 가는 길에서 상당한 시행착오들을 겪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어느 시대보다 인류의 행복과 공동번영을 목적으로 급격하게 확산되는 현상이다. 세계화의 영향이 크다.

이제 인류의 삶은 평화를 위한 정치, 경제, 문화 등 세계적인 공동체에서 하나가 되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인혁 

  

재단법인 평화의 길 국제재단 법인대표/이사장

한국신학교수협의회 대표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