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으로 하고 싶은데” 재계 재난지원금 억지기부 부글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데” 재계 재난지원금 억지기부 부글

문형봉 2020-05-13 (수) 00:55 4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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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재난지원금(이하 지원금) 기부 방식과 기부처 제한 등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재계에서 나온다.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여당 고위 관계자가 잇따라 기부를 ‘인증’하면서 민간을 압박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자발적 기부 취지를 퇴색시킨다는 것이다. 아울러 기부처가 정부가 운용하는 고용보험으로 단일해 다양한 민간 기부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삼성그룹은 12일 전 계열사 임원들이 지원금을 기부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관계자는 “방침을 공식 공유한 건 아니지만 삼성전자를 포함해 전 계열사 임원들은 지원금 지급 취지를 고려해 기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60개 삼성 계열사 임원 2000여명이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지원금은 100만원이므로 기부 규모는 2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SK, LG, 현대차 등은 기부를 그룹 방침으로 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5대 그룹 임원 A씨는 “기부는 자발성이 가장 중요한데 그룹 차원에서 독려한다면 취지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례를 볼 때 삼성이 기부를 결정했기 때문에 다른 기업이 삼성을 뒤따를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재계 내부에선 정부의 지원금 기부 독려에 대해 여러 문제 제기가 나오고 있다.

우선 현안이 많은 기업들은 기부 인증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자칫 ‘미운털’이 박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대기업 간부 B씨는 “정치권에서 먼저 나서면 기업은 당연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내수 진작을 위해 지급한 돈이라면 본래 목적에 맞게 소비하도록 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했다.

기부금이 고용보험기금에 일괄 편입되는 것에 대한 불만도 크다. 5대 그룹 임원 D씨는 “시민들이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직접 지원하는 데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이 돈을 한 곳에 내도록 한 것은 기부의 자발성과 선의를 훼손시킨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부처도 정부가 책임지고 있는 고용보험기금이다 보니 받은 돈을 세금으로 다시 내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러나 신속하게 지원금을 지급하고 행정 비용을 줄이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10대 그룹 간부 E씨는 “정부 입장에서 지원금을 빠르게 지급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택한 게 ‘전 국민 지급 후 기부 독려’라는 지금의 방식이 아닐까 한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기부처를 다변화하고 기부 압박 분위기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고용보험금 단일 기부는 기부에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기부하는 사람이 기부 방식이나 기부처를 선택하고 이에 대해 동일한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면 기부 참여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대기업 한 직원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기부해도 기부한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을 것 같다”며 “기부의 본질에 맞게 국민의 자발성에 맡겨주면 좋겠다”고 했다.

김아란 아름다운재단 나눔사업국장은 “(지원금 기부가) 시민들로 하여금 일상에서 나눔을 접하는 기회를 만들어 기부 문화가 한 걸음 더 도약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국민들이 주변에 어려운 장애인, 독거어르신, 이주배경가정 등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다양한 취약계층을 위한 기부처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평가했다.

 

문형봉 기자 [저작권자 헤드라인코리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