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우리가 배워야 할 하나님의 교과서이다. 사람과 자연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어슴푸레 들풀과 들꽃, 향 가득한 나물들이 안개 자욱한 새벽을 깨우며 일어나는 광경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숨결을 느낀다. 희망이 가득한 아침 햇살은 이끼 낀 벼랑에 떨어지는 낙수처럼 신선하며,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새날을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것과 같다.
자연은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의 세계이다. 산과 강과 바다, 동물과 식물, 비와 바람과 구름—all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드러내는 ‘창조의 언어’다.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며 부드럽고 싱그러운 사랑을 품을 수 있는 이유는, 자연 자체가 하나님 사랑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꽃이 나비와 벌에게 달콤함을 나누어 주듯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이웃에게 기쁨과 생명을 나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연은 오늘도 우리에게 속삭인다. 강풍과 폭우, 낙뢰가 치는 가운데서도 “너희는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느냐?”고 조용히 질문한다.
삶에 지치고 의식주 문제로 고단한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 말씀하신다. 자연은 영원한 스승이 되어 침묵의 지혜를 가르친다. 소낙비 가운데서도, 폭풍우와 벼락 속에서도 자연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은 오히려 온 땅에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음성처럼 깊다.
사람을 ‘이성적 동물’이라 칭한 그리스 철학자들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떠날 때 자연의 침묵 속에 담긴 바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은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다. 그러나 동시에 자연으로 돌아갈 흙으로 지어진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산과 바다, 하늘과 땅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창조의 흔적을 동시에 발견하게 된다.
이성이 성숙할수록 개인적 욕망보다 하나님의 뜻과 이웃의 행복을 추구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은 과학과 기술로 자연을 정복한 듯 보이지만, 하나님 없이 사용된 인간의 능력은 자연 파괴와 생태계 파멸을 불러왔다. 굶주리는 사람이 있는 현실 또한 이성이 만든 문명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잃어버린 인간의 죄성이 만든 비극이다.
사람은 행복을 찾고자 재물과 권력을 추구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할 때 사람은 결국 스스로 만든 고통 속에 빠져든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셨다. 인간의 죄와 욕망의 문제를 해결하고 참된 자유와 회복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든 말든, 자연은 하나님이 주신 자리에서 묵묵히 그 향기와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마치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 알든 모르든 끊임없이 우리에게 부어지는 것처럼.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부모의 사랑과 이웃의 도움 속에서 성장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공동체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이웃과 멀어질 때 고독해지고, 고독은 결국 영적·정서적 죽음으로 향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자연 없이는 살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덧 자연과 멀어지고, 창조 질서를 떠나 자기 중심의 삶을 추구하고 있다. 성경은 말한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인간은 자연을 정복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지켜야 할 창조의 동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을 통해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회복해야 한다. 자연과 사람,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이 하나로 어울려 아름다운 삶을 누리는 것—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창조의 복음이며, 우리가 회복해야 할 삶의 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