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배제의 기록까지 함께 성찰해야 진정한 세계기록유산 된다
한국 족보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족보는 한반도에서 수백 년 이상 이어져 온 가계와 혈통의 기록으로, 각 가문만의 역사이자 공동체 기억의 보존 수단이 되어 왔다.
전쟁과 근대화, 산업화로 인해 수많은 문화유산이 훼손되거나 사라졌지만, 한국의 족보는 각 가문이 꾸준히 관리하며 방대한 기록 체계를 유지해 온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족보에는 단순한 가계도 이상의 가치가 담겨 있다.
해당 기록을 통해 과거 한 사회의 가족제도, 결혼 문화, 사회 계층과 신분질서, 향촌 공동체의 구조 등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어 왔는지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전통사회의 역사적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이자, 오늘날 우리의 뿌리와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이 점에서 한국 족보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은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 인류가 함께 공유할 유산으로 보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족보가 가진 이면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족보는 한편으로 가부장제와 신분제 사회를 유지·강화하는 도구로 사용됐고, 여성과 서얼, 천민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기록한 증거이기도 하다.
족보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자격 자체가 철저하게 남성 중심이었다. 결혼 여부, 출신 성분, 혈통의 순수성 여부에 따라 사람을 구분했다.
또한 족보를 기준으로 혼인과 진로, 심지어 생존 방식까지 결정되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날까지도 일부 지역에서는 족보가 유지되고 있다. 결혼과 상속 문제, 심지어 지역 내 서열의 잣대로 작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단순히 오래된 기록을 보존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인류가 공유해야 할 가치와 교훈을 담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자산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한국 족보의 유네스코 등재 추진 과정에서는 단순히 전통의 자랑거리로만 포장하기보다는, 이 기록 안에 내재된 성차별과 신분차별의 역사,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현대사회의 노력을 함께 담아내야한다.
유네스코 등재를 통해 세계에 ‘한국의 족보 문화’를 알리겠다는 목표만 내세운다면, 오히려 차별적 기록이라는 국제적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다.
이제 한국 사회는 과거의 족보 문화가 오늘날의 과도한 혈연주의, 지역주의, 학연·지연 중심 문화와 어떻게 맞닿아 있었는지 성찰해야 한다.
족보는 우리 문화유산으로서 보존 가치가 있지만, 과거의 차별을 반복하거나 부추기는 도구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유네스코 등재 추진 과정에서 관련 학계, 시민사회, 각 지역 공동체가 함께 참여해 족보 기록 안에 배제되어 있던 여성, 서얼, 노비 출신 등의 목소리와 시각을 함께 담아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족보를 ‘과거의 유산’에 가두지 않고, 한국 사회가 직면한 평등·포용 가치 실현과 공동체 회복의 자산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한국 족보 유네스코 등재 추진은 단순한 문화 홍보 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과거의 전통과 차별의 역사, 현대사회의 평등·인권 가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세계와 대화할 것인지를 시험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등재 추진 과정에서 다양한 연구와 사회적 논의를 통해 족보를 성찰적 문화유산으로 재해석하며, 미래 세대가 올바르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한국 족보는 인류가 함께 공유할 세계기록유산으로서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며, 한국 사회의 성숙함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