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교수 칼럼] 인사청문회는 부정비리의 굿판인가](http://www.xn--9m1br3m8xg8xeotb.com/wysiwyg/PEG/se2_17535395766211.jpg)
전 대 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내각 구성이 일단 끝났다. 인수위원회를 차릴 겨를도 없이 막바로 국정에 임한 이대통령은 윤석열 내각으로 급한 결정을 마무리하며 새 장관들을 지명하여 멋진 출발을 다짐했다. 그들의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좋은 학교를 나와 왕성한 사회활동으로 자기 분야에서는 내로라하는 인물이어서 국민은 박수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장관이 오고 갔지만 청문회는 지극히 형식적인 것일 뿐 어떤 하자가 나오더라도 묵살하고 지나갔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 것으로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게 뭐냐? 하필이면 여성장관 두 사람의 부정비리가 눈사람처럼 커졌다. 속담에 “털어서 먼지 나오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라고 하지만 그들의 비리는 자고새면 새로운 게 터져나오는 통에 마치 인기 드라마의 연속편을 보는 느낌이 되었다.
그 통에 다른 장관 후보자들의 부정과 비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지만 흥미를 독점하고 있던 두 여성 후보자에 가려 별다른 시비를 가릴 새도 없이 끝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인사청문회는 과거 정권과 비교해서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결국 두 여성 후보자만 희쟁자가 된 셈이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젠더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겠지만 대학교 총장에 국회의원의 신분인 그들에게 누가 그런 불이익을 줄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의 개인적인 하자가 낙마로 이어졌지만 본인들은 큰 상처를 입고 몹시 억울해할 것이 틀림없다. 여기서 문제 삼을 것은 우리나라의 인사청문회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새로운 장관이 지명될 때마다 이 진부한 현상은 바꿔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다.
물론 부정부패 비리를 보고도 못 본척할 수는 없다. 그런 걸 잘 가려내라고 청문회를 하는 것이고 이번에도 야당과 여당은 치열하게 다퉜다. 공격자인 야당은 자기네가 여당일 때 야당에게 당했던 분풀이라도 하는 듯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잘도 찾아냈다. 그런데 절대다수를 차지한 여당의 방어는 과거 여당과 다르다. 부정과 비리를 입증할 증인을 채택해야 제대로 질문이라도 해볼 텐데 아예 1명의 증인도 없는 청문회를 열었으니 허공에 대고 나팔을 분다고 들을 사람이 없다. 원천 봉쇄를 해지할 무기가 없는 소수 야당의 설움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해도 이미 해는 서산을 넘어간 뒤다. 청문회 창시자인 미국의 의회는 제도적으로 어물쩡 시간만 지나면 대통령이 청문회 통과에 상관없이 임명할 수 있는 한국과 다르다.
모든 주요 고위공직자는 청문회에서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는 한 임명할 수 없다. 아무리 대통령이 임명하고 싶어도 이 고개를 넘지 못한 후보자는 고위공직자를 넘봐선 안 된다. 인준제도가 엄연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국무총리 등 몇 자리는 청문회를 거쳐 국회의 인준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떨어진 사람도 부지기수다. 장관직 역시 인준을 거치지 않으면 임명될 수 없도록 법적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후보자의 학력과 경력이 아무리 출중하다고 해도 재산과 가족에 얽힌 복잡한 사연이 불거져 나오는 게 청문회 자리다. 숨기고 싶은 내면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이것이 공직자로서 부적당한 면이 있다면 처음부터 그는 사양하는 게 올바른 태도다. 자기 자신은 별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부정비리의 생활화가 몸에 밴 탓이다. 잘못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국정을 논하는 자리를 탐하는가?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 쓰지 말고 오이 밭에서 신발 끈을 매지 말라는 속담은 평소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 할 경구(警句)다. 행여 남의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는 행공거조를 조심하라는 쉬운 말이지만 이를 지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더구나 고관대작이나 대기업의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분에 취해 부정비리에 탐닉하는 수가 많다. 인사청문회만 열리면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던 사람의 내면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탄식이 나온다. 뭐가 부족해서 저런 짓을 했을까. 먹고 살만한 재산과 똑똑한 자식들만 내세워도 떵떵거리고 살 수 있을 텐데 꼭 그런 부정을 남몰래 저질러야 했을까.
그런 식으로 살고 싶었으면 그냥 그대로 살지 무슨 장관까지 하려고 하는가? 이런 탄식은 능력없는 무지랭이의 한탄에 그치고 마는 것인가. 이번 청문회에서 가장 국민의 분노를 자아낸 것은 이른바 ‘갑질’이다. 제자들의 피나는 노력을 독차지한 논문 표절도 교육부 장관으로서는 양심과 도덕심을 저바린 파렴치한 행동이지만 국회 보좌관을 집안 머슴처럼 부려먹은 갑질은 민주사회의 치욕이다. 고위 공직에 있으면 최고의 덕목을 구비하고 체득할 수 있도록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한다. 인격과 도덕은 남이 가르쳐 주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발분(發奮) 노력에 의해서 더 밝은 빛을 발휘하는 것이다. 아래 사람을 두고 있는 고위직들은 이 청문회에서 크게 배워야 한다. 높을수록 겸손하고 말과 행동이 의젓 하라는 옛말은 앞으로 고위 공직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가장 힘써 가꿔야 할 죄우명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