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 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1980년 5월18일.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수 없고, 아무나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5.18민주항쟁기념일이 며칠 지났다. 나는 금년만은 5.18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가려고 했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들이 자꾸 생겨나니까 가슴이 뛰려고 한다. 이러다가는 화통이 터질 것 같은 심란(心亂)을 글로라도 풀어야 되겠다 싶어 제목을 쓰는데 나도 모르게 “5.18이 벌써 40년 되었네”로 돌아간다.
내가 ‘40년생이니까 만40에 5.18을 겪었고 그로부터 어언 40년이 흘렀다. 이상하게도 4자 행렬이다. 그 때는 10.26사태로 박정희의 유신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서울의 봄이 왔다고 많은 사람들이 들떠 있을 때다. 이른바 3김시대라고 했지만 실상은 양김시대였다. 김영삼 아니면 김대중 둘 중에서 차기 대통령이 나올 것이라고 노래 불렀다. 그러나 그들은 치열한 경쟁관계를 멈추지 않고 “내가 해야 된다”였다. 영남과 호남은 각자의 지지자를 내세우느라고 각축을 벌였다. 그러나 시국은 녹록치 않아서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의 움직임이 세인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이미 5.16군사쿠데타를 몸서리치게 겪은바 있는 국민들이라 전두환의 동향을 문제점으로 봤던 것이다.
그래도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세 사람이 똘똘 뭉쳐 “우리 셋은 하나가 되어 오직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서 살신성인할 각오가 되어 있다. 국민들도 우리와 함께 나아갈 것을 굳게 믿는다.”고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국민을 배경삼아 섣부른 군부의 동향을 사전에 제어했다면 아무리 신군부라 할지라도 감히 쿠데타는 꿈꾸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1960년 4.19혁명 이후 새로 정권을 잡은 민주당이 신파와 구파가 분당하면서 둘로 갈라지자 이 틈을 비집고 군사정변을 일으킨 박정희의 5.16과 시대적 배경이 너무나 닮았다. 그 때도 신구파가 하나가 되어 당내경쟁으로만 일관했다면 쿠데타는 성공할 수 없는 구조였다.
3김이 각자 노니까 민주화 세력은 눈곱처럼 작아졌고 신군부가 발호할 수 있는 호기를 제공한 셈이다. 그것이 5.18을 부른 것이다. 신군부는 5월17일 밤 자정을 기하여 비상계엄 전국확대라는 작전을 펴면서 김대중을 비롯한 그 동조세력을 일망타진했다. 똑같은 시간에 일거에 들이닥친 검거작전을 보면 이는 이미 한 달여 전부터 검속대상의 동향을 완전 내사해 놓고 귀가시간까지 체크하여 한날 한시에 모조리 붙잡아 들인 것이다.
나 역시 17일 밤 친구들과 어울려 한잔 하고 거나한 몸으로 통금직전에 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앙정보부 요일들에게 개 끌리듯 끌려가 남산 지하 감방에서 만60일 동안 모진 고문을 받으며 소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일원으로 징역을 살았다. 이 때 가해진 고문은 필설로 표현하기에도 부족하다. 교도소는 중정 고문실에 비하면 천국처럼 편안했지만 고문으로 다친 신경이 마비되어 오랜 세월 남모르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고문피해로 몸이 망가진 사람들이 부지기수라 교도소에서도 열심히 자기 관리를 한 사람은 비교적 건강을 유지하고 있지만 나태하거나 음식 섭취에 등한한 사람은 결국 여러 가지 후유증을 앓으며 고생을 하고 있다.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6월항쟁을 통하여 민주화를 이룩하는데 이바지했다.
직선제개헌을 쟁취한 후에도 전두환이 지명한 노태우와 한판을 겨룰 선수가 단일화되어야 하는데 3김은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1노3김의 싸움은 군부집권 5년연장을 헌상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3김 아니 양김의 욕심 때문에 고통을 당한 것은 다른 사람 아닌 국민들이다.
5.18로 인하여 광주는 쑥대밭이 되었다. 165명의 희생자는 오직 신군부의 정권욕을 위한 제물이었다. 그 정점에 있는 전두환은 아직까지도 “죄송하다”는 남자다운 사과 한 마디를 아껴 무릎 꿇은 동상이 몸살을 앓는다. 그가 저지른 원죄는 아무리 빌어도 용서받지 못하겠지만 우리 국민은 그래도 그의 사과를 기대한다. 말 한마디에 천량 빚을 갚는다고 했는데 뭐가 부족해서 아낀단 말인가. 5.18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몸부림이었지 결코 정권을 탄낸 것이 아니다.
부정과 부패를 다시는 보지 않도록 모든 국민이 깨끗한 정치를 기대하면서 일어났던 혁명적 거사였다. 그런데 요즘 신문을 들썩이게 만드는 이름은 조국과 윤미향 그리고 오거돈이다. 이들이 모두 문재인정권과 궤를 같이하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국민들의 실망은 너무나 크다. 정권이 도덕성을 상실하면 나라의 기둥이 흔들린다. 정권은 아무렇게나 쥐고 흔드는 몽둥이가 아니다. 그것은 전두환 신군부 때나 있었던 일이다. 국민의 소중한 한표 한표가 모여 떠받들어준 정권은 국민에게 군림하지 않고 언제나 겸허한 자세로 국민의 진정한 뜻을 받들 줄 알아야 한다. 5.18민주항쟁 40년을 맞이하며 참았던 몇 마디를 하고 싶은데 벌써 끝줄이 되어간다. 문정권의 도덕성이 사해(四海)를 빛내기 바란다.